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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21. 2018

알베르 카뮈 <이방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짧고 간결한 문체에 내포된 깊은 의미와 풍부한 상징성은 예전에 느꼈던 것과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인 카뮈의 사상을 관통하는 인간 조건의 유한성과 부조리함, 억압적 관습과 제도 아래 소외된 인간 자체가 ‘이방인’이라는 삶의 통찰을 통해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소설은 처음 매우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이토록 무심하고 냉정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죽음에도 전혀 동요 없이 냉담하다.  그는 모친의 나이도 모르고, 장례식에 가서  울지도 않고, 관을 묻을 때 보기를 거부하고, 상중에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고, 장례식을 치른 다음 날 해수욕을 하며 여자와 희극영화를 보고 잠자리를 갖는 등 주변 사람들에게 부도덕하고  몰상식한  사람으로 비친다. 이런 행동은 후에 그가 법정에 섰을 때 배심원들에게 의도적 살인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이방인」은 1부 6장과 2부 5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부에서 뫼르소는 장래의 목표도 계획도 없이 순간에 만족하는 순진하고 즉흥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을 맞고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일상적인 모습이 무미건조하게 전개된다. 뫼르소는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야심도 없고, 여자와 사랑을 나누지만 결혼할 생각도 없다. 그에겐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그는 한 때 야망도  없지 않았지만, 곧 모든 것이 실질적으로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뫼르소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몽과 친해진다. 그리고 변심한 애인에게 복수하려는 레몽을 도와준다. 며칠 후 마리와 함께 레몽의 친구 별장에 놀러 가게 되고, 그곳에서 레몽의 옛 애인의 오빠와 함께 온 아랍인들을 만나 싸움을 벌인다.


소동은 일단락되지만 답답한 마음에 뫼르소는 시원한 샘가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몽과 싸운 아랍인을 만나고 그가 꺼내는 칼의 강렬한 빛 때문에 방아쇠를 당긴다. 한 번의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 몇 초 후 다시 네 발의 총성이 울린다.

 

2부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의 구속과 재판 과정 그리고 사형집행의 사건들이 그가 소외된 채 마치 연극 무대처럼 타인에 의해 진행되고 결정된다. 한 인간이 자기 운명의 방관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생의 부조리함, 죽음에 대한 작가의 핵심적 사상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유한한 인간 조건의 한계와 일체의 억압된 사회적 장치에 의해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인간 실존의 불합리성을 예리하게 통찰한다.


1부에서 모든 것이 즉흥적이고 냉소적이었던 주인공은 옥살이를 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고 결국 죽음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방인’은 스스로 매우 역설적이라고 인정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고 밝힌다.


뫼르소는 살인을 했지만 그의 재판 과정을 보면 그 사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뫼르소의 도덕적 결함이다. 모친의 죽음에서 보인 그의 반응이 사회 통념과 어긋나고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이 다만 사회적 유희에 참여하지 않아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뫼르소가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관능적이며 외롭게 살았다 해서 그를 표류자로 간주할 수 있을까. 작가는  오히려 그는 가난하지만 가식이 없는 인간이며 태양을 사랑하는 밝은 인간이라 말한다.


그는 사회에서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으며 진실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행동을 거짓으로 은폐하려 하지 않았으며, 그가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은 것은 검사나 재판관의 말에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적게 말함으로써 가장 많이 말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이 대목에서 왠지 숙명지어진 모든 인간의 조건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주체적 자아욕구의 절실함이 느껴졌다


그가 파멸하게 되는 것은 웅변적인 수사를, 언어의 낭만성을 거부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래서 그는 사제의 방문도 일체의 자비도 거부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죽음’은 처음 엄마의 자연사에서 시작해 주인공의 살인, 마지막 주인공 뫼르소의 사형까지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 사형집행을 앞둔 주인공의 심오한 내면의 고백을 통해 작가의 의도된 가장 핵심적 사상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가 없다. 나 또한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 주었다는 듯, … 중략,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나와 닮아서 마침내 형제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하다. …중략, 나에게 남은 소망은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뫼르소는 죽음을 수용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연장이라고 생각할 때 역설적으로 다시 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뫼르소는 엄마가 죽음을 앞두고 사랑을 왜 꿈꾸었는지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처럼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 판결 앞에 모두 다 사형수라는 기막힌 은유가 가슴을 때린다. 어찌됐건 삶의 종착역인 죽음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삶의 진실인 것이다.  하지만 카뮈는 절대적 운명 앞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앙가주망을 실천한다. 죽음이 있기에 유한한 삶이 더욱 값지고, 매 순간 이방인이 아닌 삶의 주인으로 살아야 함을 뼛속 깊이 각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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