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이 피상적이거나 관념이 아닌 현실로 깊이 와 닿는 요즘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자아를 찾는 출발점이고 진리의 초석이라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은 같은 시대에 살면서 아테네 청년들과 대화하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지만, 학문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소피스트가 청년들에게 논쟁에서 이기고 세속적으로 출세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수업료를 받는 대신,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가르칠 수 없고 그래서 수업료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기보다 그들 스스로 진리를 깨우쳐 나가길 바랐다.
소크라테스의 진리탐구 방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과 교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학생들과 독서수업을 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도 예전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책을 통해 실천하는 일이다. 물론 책을 읽고 얻는 지식적인 측면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 속 세상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자신이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일이다. 그것의 본질은 역시 자아 찾기이다. 책 속에 등장인물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왜 그가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인물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생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나가는 것, 독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생 자아 찾기에 매진한 헤르만 헷세는 ‘인생 자체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왜? 라는 물음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그것을 실현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맬 때 삶의 지도와 등대 역할을 해 주는 것 역시 독서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이 모든 사실을 실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수업을 하다보면 입시위주의 학교 공부와 연관시키기 일쑤이고 그런 목적으로 독서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서수업이 단 시간에 독해력을 키워준다거나 배경지식과 어휘력을 높여주어 학교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기대하지만 사실 그런 부분은 매우 미미하다. 기본적으로 독서를 통해 앎의 기쁨을 느끼고, 삶의 변화가 찾아오기까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꾸준한 독서와 생각하는 습관이 일상화될 때 학교 공부나 인생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