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처받은 기억, 치유의 길을 찾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by 무지개 경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프랑스 코미디 영화이다. 실벵 소메가 감독, 각본을 맡았고, 2013년 토론토 국제영화제 특별부문에 상연됐다.


주인공 폴은 잠재된 어릴 적 기억의 편린이 문득문득 수면 위로 떠오를 때면 알 수 없는 불안과 슬픔에 젖는다. 길 잃은 기억들이 흩어진 조각 퍼즐처럼 시시때때로 어른이 된 폴의 기억에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아기는 자신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다정하고 즐거운 표정에 웃기도 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움칫 놀라기도 하고, 뭔가 격렬하고 과격한 움직임에 두려워 울기도 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장면을 교차시키면서 기억에 관한 담론을 영화의 화두로 삼고 있다.

폴은 육체는 자라서 성인이 됐지만 정신은 성장을 멈춘 듯하다. 그의 행동은 아이처럼 순진하고 단순하고 의존적이다. 그의 비주체적 태도는 이모들의 양육방식에 기인한다. 물론 그가 무슨 이유에선지 어릴 때 받은 충격으로 말을 잃게 되어 스스로 의사 결정도 못하고, 자신의 감정도 잘 표현하지 못해 이모들이 걱정하는 마음에 그를 세심히 챙겨주다 보니 과잉보호로 이어져 폴을 더욱더 애처럼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와서 폴이 어른 아이가 된 것을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논쟁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다.

이모들은 항상 폴을 애처럼 대하고, 폴의 일상은 무미건조하게 반복된다. 폴은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이모들은 폴이 콩쿠르에 나가 피아니스트로서 재능을 인정받고 성공하길 기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우연히 같은 주택에 거주하는 마담 프루스트의 집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녀의 집 안엔 환상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의 비밀 정원이 있었고, 사람들은 몰래 그녀의 집을 드나든다. 폴은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되고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근본 원인을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바라지 않기에 상처를 숨겨두고 외면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어기제는 잠재의식 속에 머물다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을 통해 불쑥 나타나 고통을 준다. 마담 프루스트는 삶의 행불행을 결정짓는 기억의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한다. 그리하여 식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본능적으로 외면하고 싶었던 내면의 상처와 대면해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게 만드는 심리치료를 한다.

마담 프루스트로 인해 폴은 과거의 기억을 찾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우연한 사고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폴에게 크나큰 상처로 남은 기억의 오류는 깨지고, 아름다운 기억이 폴의 내면을 가득 채울 때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다. 그리고 상처는 서서히 치유된다.

폴에게 새로운 인생을 찾아준 마담 프루스트는 우쿨렐라 연주자이기도 하다. 불행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포옹하며 함께 공감해 주는 마담 푸로스트 같은 사람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멘토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안타깝게 몹쓸 병에 걸린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 속에 외롭고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히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영화는 ‘기억과 상처’라는 다소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바보 같지만 순수하고 선한 폴과 수다스럽지만 정이 넘치는 이모들, 외모와 달리 순박하고 배려 깊은 마담 푸루스트 등 긍정적인 인물들과 예쁜 꽃,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밝고 따뜻한 코미디로 형상화하고 있다. 누구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아니, 사람의 일생 자체가 기억의 덩어리이다. 하지만 불완전하고 모호한 기억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가 무척 많다. 영화는 잘못된 억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해준다.


특히 여과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성인이 됐을 때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 어른의 몫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삶의 보편적이며 내밀한 문제가 아름다운 영상과 심도 있는 주제로 잘 표현된 예술성 높은 영화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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