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죽여야 산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by 무지개 경

소리를 낼 수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아름답고 슬픈 음악을 들을 수 없다면, 침묵의 덮개로 세상의 모든 생명의 조잘거림을 싸버린다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소리를 내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괴물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를 보았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무거운 침묵으로 내려앉은 텅 빈 도시의 한 마트에 사뿐사뿐 맨발로 걷는 아이들과 부부가 있다. 그들은 조심스레 물건을 찾는다. 이것저것 챙기고 약도 찾아 아픈 아이에게 먹인다. 작은 아이는 발돋움을 하고 선반 위에서 무언가를 잡으려한다. 장난감 우주선이다. 하지만 작은 손이 그것을 놓쳐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아이의 누나가 절묘하게 받는다. 처음부터 긴장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가족은 수화로 말 한다. ‘절대 소리를 내면 안 돼, 그 장난감은 안 돼!’ 아빠가 내려놓은 장난감을 뒤에 오던 누나가 웃으면서 아이에게 살짝 준다. 그리고 이어 아이는 빼놓은 건전지까지 들고 나온다. 아이가 꼬옥 잡고 있는 건전지는 불행을 암시하는 물건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마트를 나오자 길은 그야말로 폐허가 된 황량한 거리이다. 바람이 불자 어지럽게 나풀대는 신문의 활자가 눈에 들어온다. ‘괴생명체 공격, 아마도 소리가 원인, 소리를 내지 않으면 살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막내가 언제 건전지를 끼웠는지 장난감 비행기에 불이 켜지면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정적깨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 바로 앞을 가던 누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여자아이는 청각장애인. 아빠가 소릴 듣고 필사적으로 아이를 구하러 뛰어오지만 괴물들이 먼저 아이를 덮친다.

이쯤 되면 공포 영화라기보단 가슴 아프고 슬픈 가족 이야기로 치닫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났건만 아이를 잃은 가족의 성처는 곪아가고, 죄책감이란 또다른 괴물로 인해 아버지와 딸의 갈등은 깊어진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 아이를 잃은 슬픔까지 더해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인데도 용케 견디는 4인 가족, 역시 가족이란 견고한 끈으로 단단히 묶인 그들은 강했다.

사실 난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공포영화를 볼라치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괴물과 으스스하고 섬뜩한 효과음이 무섭다기보단 그냥 기분이 나빴다. 이 영화도 가족을 지키려는 부부와 아이들 간의 사랑이 없었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정작 괴물이 나와 가족을 공격하는 장면은 SF 환타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움직인 몇 장면이 있었다. 청각장애인 딸의 방황에 가슴 아파하는 부성애이다. 자신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고 괴로워하며, 그 일로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딸, 그래서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만든 보청기도 마다하며 자꾸 엇나가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결국 괴물이 남매를 공격할 때 아버지는 딸을 향해 수화로 '사랑한다' 고 말한 뒤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가 괴물에게 처참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며 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모의 큰 사랑과 희생 앞에서 그 아이는 아마 생의 온갖 슬픔을 한 순간에 다 알아버렸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부모라면 아버지의 절절한 사랑에 공감하며 눈시울을 붉힐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참담할수록 사랑은 더 애틋하고

간절하다. 부부가 이어폰을 하나씩 끼고 듣는 음악은 너무 감미롭고 아름다워 현재와 부조화를 이룬다. 상반된 감정의 모순 속에 삶의 딜레마에 빠진 인간실존의 애처로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두 주연 배우는 실제 부부이기도 하다.


이미지로만 이뤄진 화면 속 세상은 소리가 없어서 조용한 듯 하지만 오히려 더 부산스럽다. 사람이나 동물의 소리가 배제된 세상에서 괴물도 어쩌지 못하는 바람, 물,나뭇잎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들린다. 그래서 아버지는 소심한 아들을 폭포 속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게 한다. 자연소리에 사람소리가 파묻혀 괴물들은 들을 수 없다. 이처럼 전도된 소리의 우위를 통해 문득 괴물은 인간세상의 온갖 소음 공해로 인해 소외된 자연의 경고가 아닐까 히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주인공(에밀리 블런트)의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출산에 임박해 지하로 내려가면서 못이 발 깊숙이 박혔을 때, 출산할 때 그 아픔의 고통은 인간으로서는 참지 못할 고문이건만 죽을 힘을 다해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표정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여자의 배가 불러오고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좀 황당했다. 어쩌자고 이런 시기에 임신을 해서 가족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까 하는 인물에 대한 원망 내지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생명 탄생은 희망을 상징할 터이다. 어차피 공포는 일상이 됐고 죽음 또한 시간 문제라해도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인간 정신이 위대한 것은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죽음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점이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완전한 절망은 없는 법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난다. 고주파에 약한 괴물의 약점을 알아낸 딸, 총으로 괴물과 맞서는 엄마, 둘의 표정은 비장하다. 괴물 하나를 해치웠지만, 밖에서 몰려드는 괴물들은 어찌할지 모르겠다. 이처럼 열린 결말을 설정해서 뒷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즐거움도 지만, 영화의 상업적 의도가 엿보여서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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