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근대국가의 시작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정치질서의 기원」에서는 근대 정치 질서의 3요소로 강한 국가, 법치주의, 책임정부의 진화를 꼽았다. 강한 국가는 권력의 효율적인 집행능력에 있으며, 법치주의와 책임정부는 권력을 제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3요소는 지역과 발전 정도에 따라 양상이 다르지만, 세 요소가 균형적인 발전을 이룰 때 이상적인 근대국가가 성립된다고 보았다.
한편 근대국가의 세 요소를 강한 국가 대 법치주의&책임정부로 묶을 수 있는데, 그것은 중국 대 서구 정치체제 경쟁의 21세기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저서인 ‘역사의 종언’에서 경쟁구도가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였다면 지금의 구도는 중국식 국가 권위주의와 서구 민주주의의 재격돌인 셈이다. 그 이유는 근대국가의 시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사상가들은 근대국가의 기원을 자연 상태의 인간들 간의 사회적 계약에서 찾았다. 처음 인간은 서로 싸우면서 협력했는데, 그 원리는 동족 선택과 상호적 이타 주의였다. 하지만 부족의 단위를 넘어 국가가 형성되면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전쟁이었다.
근대적 국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중국이었다. BC 221년에 진나라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였다. 유럽보다 무려 1800년이나 앞섰다. 나눠져 있던 봉건 국가들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군사력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전쟁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군 조직은 물론 관료제, 세제, 기술 혁신, 사상의 발달이 만개했다. 그러나 중앙국가의 권력이 비대한 만큼 그것을 견제할 진정한 법치주의는 없었다. 정부의 책임도 군주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반면 서유럽은 국가보다 사회가 먼저 발달했다. 개인주의가 근대국가나 자본주의보다 먼저 생겼고 국가보다 ‘법의 지배’가 먼저 자리 잡았다. 그 뿌리는 기독교였다. 법치주의는 체계적인 교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왔다. 11세기 교황은 황제와 서임권 투쟁을 하면서 독자적인 힘과 조직을 키웠으며, 유럽의 관료기구도 처음엔 교회 조직 정비 과정에서 탄생했다. 교회 조직이야말로 유럽 근대국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근대 정치 질서 3요소의 가능성과 한계를 말한다. 어느 하나라도 균형을 잃으면 위험하다. 법치주의와 책임정부는 그 자체로는 바람직하지만 때로는 정부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국가는 때때로 신속 과감한 결정과 집행이 필요할 때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너무 쉽게 교착상태에 빠지고 경직되며, 장기적인 정치 경제적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고뇌의 결단’이 봉쇄되고 있다.”
경제난 속에서도 필요한 개혁을 단행치 못하는 민주적 정치 현실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런 면에서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는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법치주의와 책임성이 결여된 강력한 국가는 나름의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중국 왕조에서 반복해 나타난 ‘나쁜 황제’의 경우가 그렇다. 무능한 황제가 집권할 때 국가권력은 통제 불능의 재앙이 된다. 후쿠야마는 오늘날 중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출처; 생글생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