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절규
뭉크의 <절규>는 첫 대면부터 당혹감을 준다. 극단적 공포와 절망에 몸부림치는 그로데스크한 인간의 형상과 어둡고 강렬한 원색에 휘몰아치듯 혼란한 곡선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도대체 그림 속 인간은 왜 저토록 고통스럽게 절규 하는가!
그림에 대한 안목이 짧아 세세하게 이해하고 평가 하기 어려웠지만 김원일 산문집(그림 속 나의 인생)을 읽고 어느 정도 그림의 배경지식을 얻게 되었다. 특히 화가의 인간적 고통을 이해하면서 그림이 생생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림 속 인물이 화가의 분신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화가 ‘뭉크’는 노르웨이 뢰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으나 성격 파탄자였다. 어머니와 누이는 폐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뭉크 또한 병약자였다. 그의 불행과 상처는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는 주로 생과 사,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 등 퇴폐적이고 관념성 짙은 소재를 작품 속 테마로 삼았다. 뭉크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을 보면 ‘절규’가 만들어진 배경을 알 수 있다.
‘친구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해가 저물었다. 나는 우울함을 느꼈다. 갑자기 하늘이 붉은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서 버렸다. 너무 피곤해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검푸른 도시의 협만에 걸린 타오르는 핏빛 구름을 보았다. 친구는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무서움에 떨었다. 나는 나를 에워싼 분위기가 너무 고통스러워 끝없이 외치고 싶었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실제 체험한 순간을 그린 ‘절규’이다. 불안한 선들이 화면을 채운 다리 난간 앞에서 머리털이 없는 해골의 사내가 공포에 질린 채 놀란 표정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핏빛 노을을 등지고 게스타포 같은 사내들이 해골의 사내를 따라온다.
뭉크는 불행한 가정적 편력과 병약한 육체의 고통으로 항상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래서 초기작품에는 죽음과 고통, 우수의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다. 인물은 구체적인 묘사보다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형태로 뭉그러져 있다. 마치 유령처럼 괴괴한 모습이 그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뭉크의 그림을 보면서 인간은 죽음과 고통, 고독과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재인식하게 된다. 부조리하고 모순에 찬 세상에서 처참히 무너져가는 예술가의 영혼을 느끼며 어떤 논리로도 규정할 수 없는 인간 실존적 조건 앞에 누구나 그와 같은 고통에 직면할 수 있다는 자조적 체념이 엄습했다.
그러나 인간은 필연적 숙명 앞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저항 방식이 다를 뿐이다. 뭉크는 그림이란 수단을 통해 자신의 실존적 삶에 강렬히 항거하고 때론 체념하고 좌절하며 세상과 충돌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추구한 바를 간절히 드러내며 세상과 화합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뭉크의 절규가 삶과 희망을 향한 간절한 외침으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