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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Feb 27. 2022

선택

육아를 표현하는 단 한 가지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선택이란 단어를 택하겠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 번 선택의 기로에 선다.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았던 나는 산부인과를 다녔고, 배란 유도제를 먹고도 별 효과가 없어 병원의 프로그램에 따라 인공수정을 권유받았다. 특히나 나이가 많았던 나에게 병원의 압박은 직설적이었다.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야 된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의지가 있다고 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눈으로도 볼 수 없었던 난임이라는 큰 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릴 적부터 다니던 한의원에 다니면서 임신을 준비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아마도 생명을 준비하기 위한 첫 선택이었다. 그렇게 1년간의 지루하고도 초조한 시간을 지나 임신이 되고 나서는 갑자기 수많은 선택지들이 몰려들었다. 산전검사를 위한 병원은 어디로 갈지, 출산을 위해 가족 같은 중소형 병원을 택할지 대학병원을 가야 할지, 태아보험은 가입하는 것이 맞는지, 가입한다면 어떤 보험사의 상품으로 가입해야 할지, 출산을 하고 나서 산후조리원을 갈지 집에서 산후조리를 할지 등등 수많은 선택지들을 헤치고 나간 끝에 새 생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시작일 뿐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선택의 빈도와 난이도는 더해갔다. 시어머니 말처럼 한여름 물 오이 크듯 쑥쑥 크는 아이의 성장 속도와 함께 선택해야 할 일도 가열차게 늘어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나 비대해져 버린 육아용품 시장의 수많은 선택지를 매번 정글 탐험하듯 헤쳐나갔다. 아이 칫솔 하나 사려고 해도 선택지가 어찌나 많은지 손가락 칫솔을 사야 될지 실리콘 칫솔이 좋을지 미세모 칫솔이 나을지 고민하는 새 일주일이 지난 적도 있었다. 내 성격 탓일 수도 있겠고, 너무 많은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매번 선택에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때그때 후기를 찾아보고 그저 마음에 와닿는 것을 골랐다. 그나마 큰 원칙이 있다면 무엇이 되었든 내 마음이 편할 것, 미리 필요할 것이라 예단하지 말고 꼭 필요할 때 살 것. 얻을 수 있거나 중고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적극적으로 중고를 애용할 것 정도였다. 첫 돌을 막 지난 지금, 선택과 선택 사이 짧은 숨을 돌리며 돌이켜보건대 이 원칙은 그럭저럭 잘 지켜나가고 있다. 특히 장난감의 경우 아들의 취향이란 정말 예측이 불가능해서 우연한 기회에 흥미를 보이는 경우 그것을 유추하여 조금씩 늘려나갔다. 아들은 대체로 건전지를 사용해서 움직이는 장난감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거나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어 본인 손으로 두들기고 노는 장난감이나 공 몇 개를 얻어다 주었더니 몇 달째 잘 가지고 논다.      


아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목욕을 해야 하니 목욕통과 보습제를 구비하고 추위가 오면 겨울 옷들을 사고 이유식이 시작되어 밥그릇과 숟가락을 준비하는 정도의 그런 저급한 선택. 어느새 아니 아주 가까운 시일 내, 조금 더 고차원적인 선택들을 아주 신속하게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마음에 세우고 즐거운 마음으로 성큼성큼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이 원칙이라는 것이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세운 그런 값진 원칙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요즘은 내 마음에 쏙 드는 육아서를 하나 골라볼까 생각도 해보고 막연하지만 앞으로 이 미생을 어떤 사람으로 키우면 좋을지 상상도 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읽은 육아서 중에서는 "나는 자라고 있어요"라는 책이 마음에 남는다. 처음 책으로 읽었던 육아서이기도 하고, 20개월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아기의 성장을 10번의 도약이라는 섬세한 통찰력으로 엮어낸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미숙한 아기들의 미세한 변화를 10번의 도약이라는 개념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수많은 아기들을 연구했을 글쓴이의 정성에 존경을 보내고 싶다. 게다가 10번의 도약에 따라 필요한 부모의 역할도 꽤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사소한 일이지만 아이의 옷을 입혀줄 때 거울 앞에서 입혀보라는 책의 내용을 읽고 모자 쓰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 아들에게 거울을 보면서 모자를 씌워주었더니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그 흥미란 게 몇 분을 가지 못하지만 어디서 내가 이런 통찰을 얻겠는가! 인터넷에 수많은 정보가 있지만 주로 현상에 대한 관찰과 수많은 육아용품에 대한 후기가 있을 뿐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얻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다. 20개월 후에도 나를 이끌어줄 이런 책들을 찾아보고 싶다.      


어떤 아이로 키워내고 싶냐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 사랑을 타인에게도 따뜻하게 전할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이 추상적이고 막연한 기준이 앞으로 닥칠 수많은 선택에서 나를 구원해줄지는 미지수지만 몇 번을 되뇌다 보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몸과 마음이 고루 건강해야 하니 훈육이나 교육에 있어서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북돋아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이고, 타인에게도 선뜻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아이가 되려면 어릴 때부터 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을 접해야겠지. 오늘도 남편과는 아들이 똥을 몇 번 쌌는지 얘기하는 저급한 대화에 머물지만 그간 우리 부부가 나눴던 이야기들로 유추해보건대 남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어려운 선택들이 밀물처럼 몰려오겠지만 피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헤쳐나가겠다. 아이와 남편과 살갑게 이야기 나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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