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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Feb 27. 2022

시간

최근 남편에게 크게 화가 난 적이 있다. 주말 오후였다. 남편은 얼마 전 한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고, 그 잡지사의 요청을 받고는 인터뷰와 함께 실릴 사진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두 시간이 흘러 아이는 저녁잠을 잘 시간이 되었고, 보채는 아이 울음소리에 남편이 방에서 나와서는 잠깐 아이를 보는 사이 나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아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나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새벽에 눈을 뜨고 다시 생각해보아도 괘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어진 주말 오후지만 모처럼의 주말 오후에 남편은 무려 두 시간을 엉뚱한 일에다 쏟아부었다. 부아가 치밀었다. 다음날 시댁 어른들께서 아이를 봐주시겠다며 나가서 놀고 오라는 말에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일산에 가서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러 가는 택시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 시간에 그렇게 부아가 났던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남편이 불쌍하기도 했다. 나중에 남편에게서 들은 해명은 인터뷰 사진을 고르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먼저 선뜻 말하겠지 생각하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진 파일 정리를 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래 그 두 시간. 아이가 태어나기 전 두 시간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설거지에 얼렁뚱땅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자정이 되어 있었고,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생각은 있었어도 그리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지금은 내게 30분이란 온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머리를 감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도 15분이란 시간이 남으니 손톱을 깎고 마스크팩을 하나 붙이기 딱 좋은 시간이다. 조금 욕심을 낸다면 3분 거리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와도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고, 일주일치 밀린 일기를 쓸 수도 있다. 그래서 그날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게 써버린 두 시간이 그렇게 화가 났나 보다. 나의 시간관념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랬나 보다. 그동안 남편에게서 느끼는 서운함, 얕지만 지속적인 분노, 이유 없는 불만이 어쩌면 시간관념의 차이에서 온 것일 수 있겠구나 생각해본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는 자연스레 내 시간을 아이의 시간에 얽어매었다. 아이의 일과에 따라 시간에 대한 감각은 극적으로 날카로워졌다가 또 극적으로 둔감해졌다. 아이가 잘 때와 깨어있을 때, 조금 더 세분화하자면 아이가 깨어있을 때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시간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시간은 더 이상 같은 시간이 아니었다. 아이가 잘 때 시간을 대하는 나의 감각은 함께 잠이 들었고, 그것이 몇 시간이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깨어나 독박 육아를 시작하게 되면 잠자던 시간에 대한 감각은 1초 단위로 마음에 새기며 나의 고생스러움을 과장했다. 누군가에게 그 괴로움을 토로했다기보다 그 과장된 고생스러움을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그 1초 1초가 쌓여 무려 두 시간이 되자 나도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되어 내 마음을, 그리고 남편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이미 예상된 독박 육아는 그나마도 괜찮았다. 그만큼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각오를 다졌던 것이다. 물론 예상된 독박 육아라 하더라도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몸과 마음은 거칠고 힘겹게 감내하고 있었지만 견딜만했다. 그런데 누군가 함께 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시간을 온전히 내가 감내하자 내 마음에 어느새 날카롭고 잔인한 가시가 돋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대했던 마음이 좌절되자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다. 1분 1초에 가시덩굴같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는 마음에 나도 당황스러울 지경이었으니 남편이 이 잔인한 마음을 어찌 눈치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생각보다 나를 괴롭혔던 감정이 꽤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나의 시간에 대한 감각은 하루 24시간이 균등하게 배치되어 있지 않았고 굉장히 자의적이며 울퉁불퉁했다. 남편의 시간관념은 아이가 생기기 전이나 후가 별반 다를 바 없이 균질적이고 비교적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괴리가 우리 둘 사이에 감정의 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남편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힘들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5분을 몇십 번 반복해야 내 하루가 끝이 난다는 사실. 그 무시무시한 사실을 조용히, 악의 없이, 진심으로 알려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내공이 필요한 일이니 차츰,  마음속에 젖어들 수 있을 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겠지.     


며칠 전 오랜만에 남편과 둘이서 동네를 걸어 산책했다. 우연히 남편이 출퇴근하는 홍대입구에서 연남동 그리고 연희동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남편이 농담처럼 이 많고 많은 고깃집이 유혹하는 퇴근길이 참 쉽지 않다고 한다. 그제야 많이 익힌 고기를 먹을 때마다 화가 난다는 고기 성애자 남편이 지나왔을 수많은 고깃집이 눈에 들어왔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늦은 퇴근길에 잘 익은 고기 냄새를 견디며 걸어야 했을 중년 남자의 퇴근길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구나. 내일 다시 돋을 마음의 가시일지언정 마음이 한층 누그러지면서 뜨뜻해진다. 서로 매우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경험을 부지런히 공유하고, 이해하고 때로는 낯설어하고, 섭섭해하고 그러다 연민하는 이 마음을 반복하는 이상 우리는 괜찮겠구나. 썩 좋은 동반자가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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