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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Feb 27. 2022

반복과 변주

몇 해 전, 나보다 먼저 아이를 키우던 지인이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면서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인데 육아는 무한 반복의 연속이라 참 쉽지 않다고 했다. 당시 나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터라 막연히 육아가 의외로 적성에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실하게 반복할 수 있는 인내가 내 최대 강점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었고, 무한반복에서 오는 지겨움 정도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육아가 적성에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적성을 따지기 전에 육아는 고된 것이었다. 그리고 육아는 단순 반복만이 아니라 반복 속에 수많은 변주와 도약을 품고 있어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일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신생아 때는 2~3시간마다 우는 아이를 어르고 먹이고 재우고 하는 일을 하루 종일 반복하다 보면 지겨움을 넘어 정신이 혼미해졌고, 혼미해지는 단계를 넘어서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아이는 변주와 도약을 거듭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다가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 같은 동작을 하루에도 수백 번 반복하는 무한반복의 시기가 오는 것이다. 반복과 변주를 기가 막히게 오가면서 가만히 누워 울고 먹고 자고 싸던 아기는 뒤집기와 되집기, 기기, 서기, 걷기를 빠르게 익히며 성장해 나갔다. 나는 애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단순 반복에는 취약했지만 아이의 이런 성장이 너무나 신기하고 귀여워서 그 지겨움을 이겨내고 어느새 어엿한 육아인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차근차근 도약해나가는 아이의 성장이 그저 대견하고 좋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을 거듭하면 할수록, 아이의 도약을 경험하면 할수록 단순 반복을 그저 기계적으로 반복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이 어쩐지 심리적 부담감이 되어 돌아왔다.      


우선은 도약의 지점에서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사람이라면 무릇 관성이 강한 것인지 내 뇌가 변화에 둔감한 것인지 아이가 반복을 하다 갑자기 도약하는 순간, 몇 초간 사고(思考)의 공백이 생긴다. 그리고 주로 그 공백에서 사고(事故)가 생긴다. 뒤집기 되집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배밀이를 열심히 하던 어느 날, 아이는 처음 팔과 다리를 어설프게 떼며 기어가기를 시도했다. 분명 아이를 잘 보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어설펐던 첫 기어가기에서 아이는 가차 없이 고꾸라졌다. 빠르게 고꾸라진 것도 아닌데 내 손은 한 박자 늦었다. 처음에는 그저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넘어질 위험이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서도 몸이 반응하지 않는 공간이 계속 생기는 것이었다. 1초도 안 되는 그 위험한 공백 속에서 아이는 어느새 체득한 반사신경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기거나 실패하여 고꾸라져 울곤 했다. 이런 공백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면 40년 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해 왔던 단순 반복이란 정말 단순한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기계적으로 견디기만 하면 되는 그런 작업 말이다.      


그리고 더 커다란 심리적 부담감은 아이의 무한반복이 효과적으로 도약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구심에서 기인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의 무한반복에 반응하며 독려하는 나의 반응이 아이의 도약과 성장을 효과적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종종 내 마음 언저리에 앉는다. 같은 노래를 수백번 반복해서 듣거나 뒤집기를 수백번 시도하는 아이를 보면서 매번 새롭게 반응하고, 그 반복이 도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며, 도약의 순간을 함께 하면서 아이의 물리적 안전과 심리적 안정을 제공해주어야 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지금 내 반응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항상 떠나지 않는 그 의구심을 가슴에 품은 채. 그리고 그 반복이 너무 지겨워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가 아이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스레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100년간 어쩌면 그 이상 지속될 인생의 가장 첫걸음을 함께 하면서 본인도 기억하지 못할 이 시간을 오롯이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무거운 경험인지 되새겨 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각도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것이다. 오늘도 눈을 뜨기가 무섭게 밥을 달라고 하는 아이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잘 녹지도 않는 소고기덩이로 이유식을 만들라치면 진땀이 난다. 어제도 만들었고, 오늘도 만들고 내일도 만들 이유식인데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밥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 아들은 열심히 아기똥을 만들고, 똥을 씻고 나면 엉덩이에 로션을 바르고 기저귀를 채운다. 한치 여유도 용납하지 않는 이 일사분란한 작업에 도약, 성장, 생명이라는 고상한 자각은 다시금 잊혀진다. 그리고 무의식중에는 이런 자각없이도 아이는 말없이 잘 커줄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이 있다.      


가끔 비인간적인 업무강도에 시달리면서 아침에 눈을 뜨기가 두렵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지금은 아이보다 먼저 일어난 날이면 오늘 하루 펼쳐질 무한대의 시간과 그 시간 동안 내가 치러내야 할 무한반복, 그리고 나도 알 수 없는 아이의 도약과 성장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득해진다. 주어진 많은 일들을 빠른 시간 내 처리해야 한다는 업무의 부담감과 같은 부담감에 더해 망망대해를 걷는 것 같은 아득한 부담감이 동시에 얹혀 있다. 아이가 종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하는 동화책들을 읽어주면서 가끔은 이 지겨운 반복이 언젠가는 큰 도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고상한 자각을 하면서 오늘도 육아는 계속된다.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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