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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Apr 25. 2022

세상에서 가장 질긴 애증관계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40년이 지나도 참 한결같다. 자식에게 자신의 시간과 체력과 노고를 다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손자에게 온몸을 내던진다. 동시에 자신의 크고 작은 고집들을 여기저기 심고 있다. 나는 그런 우리 엄마가 참 고마우면서도 안쓰럽고 익숙하지만 불편하다.      


출산을 하고 나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의 끼니를 변함없이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우리 엄마라는 것을.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고, 나는 엄마의 걱정에 기대어 산후조리 기간이 훨씬 지나서까지 잘 먹고 잘 쉬었다. 어느새 아이가 15개월이 되어가니 엄마 아빠가 육아도우미를 자청하고 나선 것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물론 중간에 아빠의 항암으로 몇 달 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다행히 항암 경과가 나쁘지 않았고, 손자 재롱이 항암 기간에 큰 활력소가 된다는 부모님 말이 사실이라 믿으며 꽤 긴 육아시간을 함께 해 온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가 이사를 온 탓에 부모님이 있는 곳과 거리가 꽤 멀어졌는데도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꾸준히 우리 집에 들러 손자를 봐주신다.      


일단 엄마가 오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이다. 아침부터 나와 남편이 먹을 반찬거리와 아이의 이유식 거리를 사들고 가깝지도 않은 길을 열심히 와서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한다. 내가 밥을 먹을 동안에는 손자와 놀아주거나 등에 업고는 잠을 재운다. 아이가 자면 그 틈에 본인의 밥을 먹고 남는 시간에는 집안일을 하거나 다시 저녁 반찬거리를 준비한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엄마를 보면 저러다 병이라도 나면 나는 미안해서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엄마의 한마디 한마디에 툴툴대며 불만을 달며 고집을 피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왜 나는 이렇게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엄마에게 부아가 나는 걸까. 차라리 짜증을 내려면 제대로 내든지 서로 섞이지도 않는 고마움과 죄책감과 미안함과 짜증이 버무리가 되어 마음속이 시끄럽다.      


며칠 전 아이 엉덩이에 뾰루지같은 것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뾰루지가 난 지는 며칠이 지났는데 몇 개 되지 않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뾰루지가 많이 늘어 사타구니와 엉덩이에만 뾰루지가 10개 정도 올라왔다. 뾰루지를 보자 엄마는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였고 나는 지켜보다가 내일 남편과 아이를 함께 소아과로 보내겠다고 했다. 엄마는 뾰루지 옆을 긁어대는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 가려워하는데 오늘 밤을 넘기면 안 된다고 하며 급하게 짐을 챙기고는 소아과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엄마는 코로나 격리 중인 나를 대신하여 택시를 타고 소아과에 다녀왔다.      


이 모든 상황을 굳이 자세히 들춰보지 않아도 나는 고생한 엄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게 맞다. 어린아이를 둘러업고 낯선 동네에 있는 병원을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방문한다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와 아이를 병원에 보내고 난 후 난 왜 참을 수 없이 화가 난 걸까. 화가 났다가도 내가 너무 염치없는 인간인 것만 같아 한숨이 나오다가도 다시 스멀스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 옛날 별 것도 아닌 일로 엄마에게 화가 났었던 일이 갑자기 번득 떠올랐다. 서울 하숙방 이사를 하던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사를 마치고 고향집으로 보내야 하는 짐들이 있어 짐을 들고 우체국으로 가던 길이었다. 엄마는 다른 짐도 많아 내가 짐을 나눠 들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놔라” 하면서 본인이 짐을 다 가지고 가는 것이다. 내가 한번 더 짐을 나눠 들자고 하면서 짐에다 손을 대었더니 내 손을 뿌리치며 “놔라”라고 했다. 몇 시간을 달려와 딸의 이사를 도와주고, 남은 짐마저 다 들겠다는 엄마를 두고 나는 차마 화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부아가 났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온몸에서 부아가 치밀던 그때 그 느낌을 다시금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적당히 짐을 나눠지고 같이 힘을 내면서 우체국으로 걸어갔더라면 나도 뿌듯했을 테고 엄마는 조금 덜 힘들었을 텐데 그 간단한 일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하는 것일까. 왜 충분히 따뜻하고 고마운 기억을 짜증 섞인 기억으로 바꿔놓는 걸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는 사람. 다 주는 만큼 본인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는 숨 막히는 상황. 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지, 휘몰아치는 통제를 막아내야 할지 갈팡질팡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짜증과 원망이 뒤섞여 무슨 색깔인지도 모를 감정이 흘러나온다.      


나는 엄마를 소아과에 보내놓고는 노래를 크게 틀고 청소를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가벼운 감정은 날아가고 가장 절실하고 무거운 감정들이 남는다. 엄마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고했다는 말만 하기엔 감정의 찌꺼기가 마음속 응어리로 남을 것만 같고 칵테일처럼 뒤섞인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기엔 나의 진짜 마음이 엄마에게 닿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엄마에게 무슨 말을 가장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나. 본인의 속도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실행하고, 자식의 인생도 본인의 속도와 방향으로 끌고 왔는데 이제 그 자식의 자식마저도 본인의 속도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던 것이다.      


그래. 일단은 엄마에게 한 박자만 늦춰달라고 하자. 한 박자만. 아이와 관련된 결정을 할 때 한 발짝만 떨어져 숨을 고른다면 엄마도 나의 생각을 들어줄 여유가 생기고, 나도 내 생각을 한번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만약 오늘도 엄마가 급하게 서둘지 않고 한 박자만 늦춰주었다면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글들을 읽어보고 뾰루지에 연고도 발라보고 경과를 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엄마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고 오늘 소아과를 다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과는 같았겠지만 서로가 조금은 여유가 있었겠지.


한 시간 반 남짓 걸려 엄마가 소아과를 다녀왔다. 나는 엄마에게 앞으로 이런 상황들이 생기면 한 박자만 늦춰

서 생각해보자 라는 말을 기어이 하고야 말았다. 많이 힘들었겠다 라는 따뜻한 말도 함께 했다면 좋았을 텐데 속도 운운하면서 이상한 말을 하는 나를 어리둥절 쳐다보고 있는 엄마에게 횡설수설 이유를 설명하기에 바빴다. 엄마는 서운했을 텐데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고, 나도 폭포처럼 흘러내리던 감정을 멈출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은 면한 셈이다.      


스무 살 이후의 인생은 그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나의 인생이다. 엄마를 탓할 마음도 없고 탓해서도 안되지만 어릴 적 내가 받았던 강한 통제와 강압을 엄마의 말투와 몸짓에서 느낄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강한 반감이 든다. 그것이 손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과 혼재되어 나타날 때는 아득한 혼돈을 느낀다. 손자는 할머니의 사랑을 그저 따뜻하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나는 왜 마음이 이렇게 개운치 못하나. 엄마에게 한 박자 늦춰서 생각하자고 한 말이 결국 나에게도 필요한 말이었나 보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할머니의 사랑은 사랑으로, 그것이 강압이 될 때는 내가 제어하면 될 테니 한 발짝 떨어져 가볍고 살가운 마음으로. 이제는 엄마도 나도 세상에서 가장 질긴 애증을 조금씩 헐겁게 만들어야 할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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