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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Apr 19. 2022

14개월 간의 사랑

14개월 모유수유의 긴 여정이 끝이 났다.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모유수유를 시작하던 초보 엄마가 이제는 그럭저럭 엄마 티가 나는 육아인이 되었다. 모유수유를 고집하지는 않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모유수유를 해보고 싶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유량이 충분치 않아 쉬엄쉬엄 모유와 분유를 번갈아 먹이며 가늘고 긴 모유수유를 이어왔다.

      

처음 모유수유를 시작했을 때 가슴에 영 관심 없는 미물을 데리고 호흡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수면시간이 모자란데 모유가 잘 나오지도 않는 가슴을 물기만 하면 잠이 드는 아이를 보며 그냥 아이도 나도 편하게 분유로 갈아탈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내 몸에서 나오는 무언가가 아이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을 두 번 다시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포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젖병만 입에 물려주면 눈을 번쩍 뜨고 세상 즐겁게 먹던 아기가 젖병을 스스로 내치고 쮸쮸를 찾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보고도 믿기지 않아 착각이겠거니 생각하며 젖병을 다시 물렸더니 짜증을 내며 다시 쮸쮸를 물었던 그날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리고 나의 보잘것없는 쮸쮸는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다. 

     

남편이 고로쇠라고 놀릴 만큼 빈약한 모유량이었지만 그 얼마 안 되는 모유를 먹겠다고 가슴에 붙어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귀엽고 기특하여 모유수유는 어느새 나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엄마들이 분리 수면교육에 정성을 들일 때 나는 옅은 죄책감을 가지고서 쮸쮸를 물리고 잠을 재웠다. 의도적으로 젖물잠을 했다기보다는 아이가 쮸쮸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잠을 잘 때 가슴을 찾았고, 젖물잠을 하지 않으면 가슴을 내어 놓을 때까지 울었다. 낮이고, 밤이고 아이는 잠이 오면 가슴을 헤집었고, 그것이 신기하고 귀엽기만 했던 초보 엄마는 젖물잠 지옥으로 빠져들어 갔다.

      

젖물잠이 치아에 좋지 않다고 하여 고쳐보려고 했지만 아이가 서럽게 우는 통에 엄두를 못 내고 마음만 무거워지던 어느 날, 유선이 막혔는지 가슴 통증이 왔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를 해주시는 선생님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아이가 쮸쮸를 애인처럼 찾지요 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격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젖물잠도 심하여 나중에 단유를 어찌할지 벌써 고민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사랑도 뜨겁게 할수록 미련이 남지 않는 법이니 사랑할 때 열심히 사랑하게 두라고 하셨다. 그리고 젖물잠이 아이 치아에 좋은 것은 아니지만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말도 함께 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벼워진 가슴만큼이나 마음도 가벼워졌다. 즐거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아이가 쮸양과의 불타는 사랑을 하고 있는 거구나.. 하며 장난을 친다. 그 이후로 아무런 죄책감없이 아이가 쮸양을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주고, 밤새 찾을 때도 매번 만나게 해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의 연애에 적극적인 조력자가 된 셈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13개월 반에 접어들 무렵, 코로나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확진자수는 날로 늘어만 갔다. 게다가 남편이 갑자기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자 돌 이후로 미루고 미뤄왔던 단유를 결심했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약을 먹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아이는 불필요한 항생제를 먹게 되는 것이니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리고 어금니까지 나기 시작한 아들이 자다가 무심코 쮸쮸를 깨무는 날에는 등골에 식은땀이 맺힐 정도로 아팠으니 이제는 이 사랑을 아름답게 끝맺어 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풍문으로 듣기만 했던 곰돌이 단유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10일간 얇은 책을 읽어 주었다. 길 건너 행복한 곰돌이 가족이 살았는데 어느 날 엄마곰이 마법에 걸려 쮸쮸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그리고 쮸쮸를 먹지 못하게 된 아기곰이 매일 배가 고파 울면서 잠이 들면서 쮸쮸를 줄 친구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책에다 스티커를 붙여 나가면서 10일이 되는 날 가슴에 곰돌이 패치를 붙이고 모유를 끊었다. 곰돌이 패치를 보면서 빙그레 웃던 아이는 잘 시간이 되어서야 그 의미를 알아챈 듯 그때부터 2시간을 내리 서럽게 울었다. 앉아서 울다가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분을 삭이다가 거실에 나가 놀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는 서럽게 울고 그렇게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깨었을 때 습관적으로 가슴을 더듬다가 가슴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그때부터 또 서럽게 울었다. 그 이틑날은 밤잠에 들기 전, 1시간 정도 서럽게 울다 잠이 들었고, 새벽에 깨어 대성통곡한 후 한 시간 반 동안 놀다 분유를 먹고 잠이 들었다. 그러기를 5일. 밤잠이 들 때 10분 정도 서러운 볼멘소리를 하다 금방 잠이 들기 시작했다. 새벽에도 잘 깨지 않고, 깨더라도 분유를 주면 먹고 금방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섭섭할 정도로 빨리 적응하고, 빨리 성장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단유 일주일 차. 아이가 먼저 코로나에 걸렸다. 아이는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잠깐씩만 쮸양을 찾았고, 별다른 불만을 하지 않았다. 3일 후 아이와 함께 24시간 붙어있던 나도 코로나에 걸렸고 몸은 아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해열제와 항생제를 먹었다. 단유를 하지 않았더라면 약을 먹을 때마다 얼마나 신경이 곤두섰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 어느덧 단유 2주 차가 훌쩍 지났다. 아이는 아직도 곰돌이 패치를 보여달라고 하며 가슴을 들추긴 하지만 곰돌이 패치에 그려진 곰돌이를 보면서 씩 웃게 되었다. 나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뜨겁게 사랑했던 것을 잘 떠나보낸 아들이 대견하고, 그런 기회를 만들어준 나 자신에게도 칭찬을 하고 싶은 요즘이다. 아들은 단유를 하고 14개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누워서 쮸쮸없이 혼자 잠드는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육아서에 적힌 권고 시기에 비하면 1년이나 뒤쳐진 셈이다. 하지만 그 사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이별을 이겨냈고 잘 떠나보내는 방법을 배운 셈이니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단유를 하고 나서 섭섭해하는 엄마들도 많다고 하지만 나도 그동안 최선을 다했던지 후련하기만 하다. 이제 자유다!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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