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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Apr 03. 2022

토끼들의 밤

이수지 작가님의 안데르센상 수상으로 서점가가 분주해진 모양이다. 심지어 이수지 작가님을 몰랐던 나도 뉴스를 접하고는 신들린 듯 이수지 작가님의 책을 주문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수상작인 "여름이 온다"를 비롯하여 작가님의 다른 책 3권을 함께 주문했는데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직 한 권 밖에 받지 못했다. 주문량이 많아 출판사에서 주문량을 늘리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문자를 받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한강 작가님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울림이 있다. 조금 더 즐거우면서 생동감 있는 울림이라고 해야 할까. 괜스레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그런데 며칠 전, 이수지 작가님의 수상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작가님의 프로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작품 중에 재미있는 제목의 동화책이 있다. “토끼들의 밤” 토끼...밤...재밌겠구나. 나중에 사 봐야지 했다. 그런데 자꾸만 그 제목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몇 년 전 나를 스쳐 지나갔던 동화책 중에 토끼들이 밤에 트럭을 강탈하여 아이스크림을 훔쳐 달아난다는 귀엽지만 매력적인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책은 외국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면서 무심코 "토끼들의 밤"을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그 책이 이수지 작가님의 책이었던 것이다. 내 인생에 이미 한번 스쳐 지나간 사람. 그리고 작지만 강렬한 흔적을 남긴 사람.     


바로 여동생에게 문자를 했다. "토끼들의 밤" 표지를 보여주며 이 책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생도 그 책을 함께 본 장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이었으니 벌써 7년은 훨씬 지난 일이다. 결혼반지를 보러 홍대로 가는 길에 들렀던 연남동 동진시장 안 독립서점에서 둘이서 같이 무심코 펴 보고는 키득키득대면서 웃었던 그 책을 우리 둘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검고 어두운 책 표지에 이끌리듯 책을 폈고, 책 표지보다 더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금방 매료되었다. 나는 외국의 동화책은 이렇게 무서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던 것 같다. 그래서 외국책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아니 이렇게 무서운데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지 동생과 그런 얘기를 하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동생은 나중에 동화책을 쓰게 된다면 너무 착하지 않고 교훈적이지도 않은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고 하면서 하하호호 웃으며 책방을 나왔다. 그리고 그 놀라운 동화책을 가끔 떠올리기도 했는데 제목과 작가를 알 길이 없으니 그때 그 책을 사지 않은 걸 가볍게 탓하고는 또 금세 잊어버렸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물려받은 책, 선물 받은 책 그리고 내가 서점에서 산 몇 권의 책들이 더해져 벌써 수십 권의 동화책이 책장에 놓여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많은 책 중에 참 특별한 책이 몇 권있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 수만 명의 지원자 중에 샛별같이 빛나는 재능을 가진 몇 명의 지원자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특별하다는 느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데 내게 특별한 동화책이란 메시지가 섬세하고 나도 모르는 내 마음 어딘가와 공명하여 기분 좋은 흔적을 남기는 책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책들도 빙그레 웃음을 짓게 만들지만 특별한 동화책을 접하는 날이면 내가 갑자기 한 아이의 엄마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는 이 특별함. 이 탁월함을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걸까 물음 반 감탄 반 자신에게 되묻는 것이다.      


짧은 책 한 권에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이야기를 담고, 그 이야기에 색을 입혀 그림을 그려내고,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메시지를 이야기 한 켠에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얹어내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우랴. 우리가 “토끼들의 밤”을 가볍게 읽고 참 매력적인 책이었다 라며 마지막 책장을 덮고는 잊고 지냈던 7년 동안 작가님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고민하고,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내가 무심히 살아왔던 그 시간을 켜켜이 쌓고 쌓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 책 한 권을 또 그려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그 인생이 참 부럽고 존경스럽다.     

내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를 만났던 사람이 아 참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짧고 가벼운 만남들 사이사이 많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고 노력한 시간들이 켜켜이 박혀있는 그런 알찬 인생 말이다.

      



오늘 “여름이 온다” 책이 도착했다. 책을 펼쳤더니 정말 온전한 여름이 왔다. 이야기 없이 그림이 가득한데 여름 뙤약볕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책이 들썩거린다. 몇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내게 특별한 책이 되어버린 신기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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