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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May 03. 2022

나의 소중한 발에게

몇 주 전부터 앞 발바닥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오랜만에 발바닥을 뒤집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얼마 전 유리조각이 박혔다가 빠진 자리에 굳은살이 생긴 것이다. 유리 조각은 어렵지 않게 빼내었는데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티눈이 되었나 보다. 티눈을 중심으로 굳은살이 생겨 발바닥 신경을 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아이와 내가 차례로 코로나에 걸려 병원을 가려야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앞발바닥 중앙을 살짝 들고 기이한 걸음걸이로 걸으면 또 못 버틸만한 통증은 아니었으므로 격리에서 해제될 때까지 기다렸다. 남편이 작년 말 티눈을 제거하러 피부과에 다녀온 적이 있어 물어보았더니 피부과에 가면 티눈 정도는 간단히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피부를 국소 냉각시켜 티눈을 잘라낸다고 하는데 표현은 무시무시해도 아프지도 않고 1~2분이면 끝난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병원에 가서 생판 남에게 발바닥을 보여줄 생각을 하니 신경이 쓰였다. 저녁에 아이가 잠투정을 시작하면 나는 양치질, 세수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발을 씻는다. 그 순서대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씻다가 아이의 부름을 받고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치아는 한번 상하면 돌이킬 수 없지만 발이 더러운 것이야 씻어내면 그만. 가장 중요한 숙제부터 해결한다는 심상이다. 발을 씻지 않고 아이와 누웠다가 그대로 잠드는 일이 부지기수라 어느새 내 발바닥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황무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발바닥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격리가 풀리기 며칠 전부터 발바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핸드크림을 발등과 발바닥에 듬뿍 바르고 자기도 했고, 사용기한을 넘겼지만 버리기 아까워 놓아둔 슬리핑 팩을 발에 바르고서는 다음날 씻어내기도 했다. 발을 꼭 밤에 씻어야 되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아이를 핑계로 내가 너무 게으름을 피웠나 보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발바닥을 가꾸다 보니 발에서 윤이 난다. 발등 발바닥 피부가 반들반들하니 누구에게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작년 트레이너 선생님께 개인 PT를 처음 받던 날, 나는 개인 운동을 하면서 오른쪽 어깨가 처져 있어 운동을 하면서 자세를 교정하고 싶다고 했다. 내 몸과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던 선생님은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깨 혹은 허리가 틀어져서 운동을 통해 교정하고 싶다고 요청해오는데 사실은 그 부위가 틀어진 경우보다는 발이 땅에 닿는 면이 바르지 못해서 어깨나 허리가 틀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어깨나 허리는 그 부위 자체가 문제이기보다 발의 문제가 어깨나 허리를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운동을 거듭할수록 오른쪽 발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는 걸음을 걸을 때 가장 먼저 땅에 닿는 부위가 어디인지 생각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의 중요성을 깨닫고 몇 달 간은 나의 두 발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다 이사를 오면서 운동을 통 하지 않게 되었고, 운동을 하지 않으니 발에 대해서도 관심이 멀어졌다. 그렇게 또 소외된 발은 다시 황무지가 되었던 것이다. 작은 티눈에도 이렇게나 불편하고, 전체 몸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기관인데 항시 관심을 기울이기가 쉽지가 않다.     


육아를 하면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자고 몇 번을 되뇌면서도 참 쉽지가 않다. 나의 몸 중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둔자인 발을 소중히 다루기는 한참 더 어려운 일이다. 나의 소중한 발에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굴러다니는 로션일지라도 꼼꼼히 발라주는 정성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스러운 습관이 될 때까지.      



덧. 며칠을 관리한 덕분에 티눈을 제거하러 간 병원에서 나는 당당히 양말을 벗었다. 그런데 남편 말과는 달리 의외로 티눈 제거는 아팠다. 먼저 발의 각질을 제거하여 티눈의 핵을 찾은 다음 핵을 냉동 면봉으로 냉각시키는 방식이었다. 냉동된 면봉이 핵에 닿을 때 불로 피부를 태우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남편에게 살짝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며, 다시 한번 발을 소중히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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