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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May 03. 2022

생애 첫 번째 분노


14개월 아기에게 분노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가 그날 밤 표출한 그 감정을 분노라는 이름 외에 어떤 말로 부를 수 있을까.     


코로나 격리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는데도 아직 아이의 목과 코에서 쇳소리가 났다. 그날 밤도 밤중에 아이는 코가 막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서 나는 아이의 잠을 깨울세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을 뿐. 그러던 차에 아이의 호흡이 갑자기 거칠어지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잠이 너무 왔는지 눈을 뜨지 못하고 계속 울어대는 것이 보기 딱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은방에 가서는 콧물 흡입기를 가져왔다. 한번 써보고는 구석에 박혀 있었던 값비싼 전동 흡입기가 이제야 진가를 발휘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 사이 일어난 남편과 마주 앉아 흡입 준비를 했다. 전원을 켜니 '웅' 하는 소리가 났다. 밤이라 그런지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리고는 아이의 코에 흡입기를 들이밀었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던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그 울음소리를 듣고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의 몸과 얼굴을 잡고 콧물 흡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정확하게 흡입기를 갖다 대면 콧물을 제거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욕심이 난 것이다. 아이는 더 자지러지게 울었고 결국 우리는 정밀타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얻은 것은 코딱지만 한 콧물 잔해와 아이의 원망 섞인 울음뿐이었다.     


그런데 너무 늦어버린 걸까? 우리가 알량한 욕심을 버리고 아이를 눕혔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눈을 감은채 더 심하게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아이를 안아 올리자 내 몸을 떠밀면서 몸부림을 친다. 아이는 온몸을 젖히면서 방이 떠나갈 듯 울었고 나는 당황했다. 아이를 제자리에 눕혀도 다시 안아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아이를 등에 업었다. 여전히 울음을 멈추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울음소리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를 업고서 작은 방에서 서재방으로 또 작은방으로 계속 걸었다. 거실을 한 바퀴 돌고서는 거실 창문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주차장 입구를 내려다보기도 했고, 다시 침대방에서 서재방으로 들락날락했다. 그렇게 꼬박 30분. 아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원망과 분노를 울음과 알 수 없는 옹알이로 토해냈고, 울음소리가 작아지자 내 마음에도 조금씩 평정심이 찾아왔다. 그제야 나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설명도 없이 깨워서는 꼼짝 못 하게 온몸을 부여잡고 코에 무서운 기계를 집어넣어 미안하다고 했다. 몇 번을 더 반복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진심으로 미안했고, 미안한 마음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달리 없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여태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날카로운 분노를 표출한 적은 없었다. 잠이 올 때, 배가 고플 때, 생리적 욕구가 다 채워지지 않아 짜증을 낸 적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 짜증이라는 것이 배가 고프니 배를 채워주고, 잠이 오니 잠을 재워달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요구인 것을.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본인이 생각하고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자 이차원적인 분노라는 감정이 울음에 섞여 나온 것이었다. 아니 울음에 섞여 나왔다기보다 분노 그 자체였다. 마음의 응어리가 터져 나오는 듯한 울음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생각은 저만치 성큼성큼 자라고 있었는데 나는 내 생각만 갖고서 아이의 문제를 일방적으로 해결하려고 했구나. 막힌 코만 뚫으면 아이의 울음 정도는 쉽게 그칠  것이라 생각했다. 


내 어리석은 행동을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잘못된 길로 서로를 이끌면서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도 몰랐다. 다행히 분노 섞인 맹렬한 울음소리를 듣고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황급하게 사과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아이가 좀 더 큰 후에도 나는 아이에게 선선히 사과를 할 수 있을까? 그날 아이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처럼 나의 사소한 행동에 분노를 내뿜는 아이를 보고 그건 사소한 행동이었을 뿐이라고. 왜 그렇게 화를 내냐며 되려 화를 내지는 않을까. 내 행동이 실은 사소한 행동이 아니라 아이의 단잠과 평온한 마음에 돌멩이를 던지는 중한 일이었다고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랬는지 모른다. 아이가 좀 더 큰 후에. 내가 너의 마음을 좀 더 알고, 네가 내 마음을 좀 더 안다고 생각했을 때 되려 쉽게 하지 못할 것 같은 말들을 차곡차곡 연습해 보려고 나는 그날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읊조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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