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 바다 May 25. 2022

소울 푸드

아이의 점심을 준비하면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요즘 즐겨 듣게 된 <윤고은의 EBS 북까페>가 흘러나오는 점심시간은 평화롭다.      


김태리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사회자인 윤고은 작가님이 여러분들의 소울 푸드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다. 그것이 어떤 음식이든 한 사람의 인생에 한 가지 이상의 소울푸드는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멘트와 함께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 에는 주인공들의 소울 푸드가 가득하다. 사실 『리틀 포레스트』의 영화평을 접하였을 때 썩 끌리지가 않았다. 어디를 보아도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상을 그린 영화가 큰 치유가 되었다는 많은 평론가들의 평가가 가식처럼 느껴졌다. 마음에 와닿지 않는 소소한 영화는 그저 마음을 스쳐 지나갈 뿐 기억 저편 어디에도 남아있지 못할 텐데 말이다. 그래서 개봉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집에 있는 TV로 남편과 『리틀 포레스트』를 보았다. 영화는 그야말로 주인공이 엄마와 함께, 친구와 함께 그리고 조용히 혼자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장면으로만 가득한데 왜 그리도 먹먹한지. 그리고 그 먹먹함이 큰 위로로 이어졌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를 보고서야 음식을 만들고 나누고 먹는 일은 그 자체로 참 대단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매일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어 그 소중함과 깊이를 자주 망각하지만 말이다.

     

영화에 대한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좀처럼 강요하는 일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윤고은 작가님의 멘트가 그날따라 커다란 목소리에 실려 나와 그랬는지 나는 내 소울푸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떠오르는 그럴듯한 음식이 없다. 초밥. 카레. 미역국. 닭볶음탕. 소울푸드라고 하기엔 마음에 울림이 없다. 그저 즐겨먹는 음식 정도이다. 조금 더 생각해본다. 내가 힘들 때 생각났던 음식, 먹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음식이 내 인생에 한 가지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쉬울 줄 알았던 내 인생 소울푸드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부모님과 함께 살 때 학창 시절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리고서야 소울 푸드라도 불릴 만한 음식이 떠올랐다. 초여름날 강된장과 함께 먹던 삶은 호박잎 쌈. 그리고 여린 상추와 함께 싸 먹던 고등어 된장찌개. 그 음식을 떠올리자 비로소 해가 남은 저녁에 낮은 밥상에 둘러 모여 가족들과 함께 먹던 저녁 한 끼가 생각난다. 소울푸드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음식과 함께 쌓였던 시간이 빚어낸 추억 그 자체인지 모르겠다. 그럴듯한 소울 푸드를 찾은 것 같아 안도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서인지 며칠 전 엄마가 어릴 적 여름이면 자주 먹었던 장어국을 끓여보겠다고 했을 때 평소와는 달리 꽤 열정적으로 요리 과정을 지켜보았다. 내 아이가 커서 어느 유명 음식점의 낯선 메뉴를 자신의 소울 푸드라도 이야기하는 그런 장면을 생각하니 좀 서글펐기 때문일까. 나도 옛날 사람이 되었는지 내 아들에게만큼은 내가 만든 음식이 자신의 소울 푸드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장어국은 커녕 인터넷을 보지 않고 내가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요리는 아직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기에 너무나 궁색하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내가 정성스럽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차릴 수 있는 저녁상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더 아득해진다. 지금도 아이의 보잘것없는 밥상을 차리는 일이 버거운데 복직을 하면 호박잎 삶는 것조차 사치가 될 것을. 이런 내가 아들에게 과연 따뜻한 소울 푸드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차라리 지금부터 그럴듯한 식당을 찾아 맛있게 먹으면서 추억을 쌓는 것이 현명할지. 무엇이 중한지 가끔 잊어버리며 이곳저곳 바쁘게 뛰어다닐 때 아들에게 소울 푸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나의 중요한 임무를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소울 푸드의 어원은 노예로 미국으로 건너온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전통 음식을 일컫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소울 푸드는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한 가지 이상의 소울 푸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소울 푸드의 무게를 생각해보라는 윤 작가님의 현명한 조언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소울 푸드다운 소울 푸드를 내게 선물해 준 엄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진다.  

작가의 이전글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