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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May 31. 2022

그 가을의 일주일 마지막편

인생은 계속된다

두 번째 항암으로 2021년의 마지막 날을 병실에서 보낸 우리 아빠. 항암을 무사히 끝내고 몸도 마음도 차츰 회복되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흘러 2월 말이 되었고, 세 번째 항암 일정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하루하루.   

  

2022.2월은 한창 오미크론의 기승으로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한껏 위축되어 있던 시기였다. 더구나 코로나 최전선에 서 있는 병원들의 긴장감과 피로감은 터질 듯 극대화되고 있었고, 코로나 환자들을 위한 병실 확보라는 또 다른 부담감도 점점 커지던 때였다. 그래서 과포화 상태의 병원으로부터 입원 대신 외래로 항암을 진행하자는 제안을 듣고도 누군가를 탓할 수 없었다. 병원의 최우선 순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병원 생활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여동생과 나는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던 반면, 엄마와 아빠는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집에서 항암을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더구나 엄마 아빠의 집이란 5평 남짓한 임시거처였는데도 말이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기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삭막한 암병동의 현실은 그런 것이었나 보다. 그렇게 해가 바뀐 2월 28일. 세 번째 항암이자 첫 번째 외래 항암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하루에 아침저녁 2번의 항암제 투여가 끝나면 하루를 쉬고 그다음 날 항암제를 또 두 번 투여받았다. 그렇게 총 6번의 항암제 투여로 3차 항암이 마무리되었다. 아빠는 아침에 병원에 가서 항암제를 투여받고, 집에 돌아왔다. 저녁에 또다시 병원을 방문하여 항암제를 맞고 집에 와서 밤잠을 청했다. 다행히 항암 기간 중에도 큰 부작용은 없었고 항암이 끝난 후에도 약간의 피로감 외에는 큰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3월 20일 경이되자 항암으로 저하되었던 수치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3차 항암은 그렇게 수월하게 마무리되었다.     


3차 항암이 무사히 끝나자 담당 교수님은 마지막 항암인 4차 항암 일정을 3월 말 혹은 4월 초로 잡자고 했다. 첫 번째 항암과 마지막 항암 사이의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암세포가 되살아날 수도 있어 일정을 서둘렀던 것이다. 그런데 3월 말.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고 연이어 아빠가 확진되었다. 담당 교수님은 병원에서는 그저 잘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항암 일정을 2주 정도 연기하였다. 백혈병 환자에게도 특별한 처방은 없었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견디면 나을 수 있구나 위안이 되기도 했다. 아빠는 밤마다 39도 이상의 고열로 고생하다 보건소에서 65세 이상 환자에게 처방되는 팍스로비드를 처방받고 회복하였다. 백혈병 환자인 아빠가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나 막연한 불안감에 전전긍긍했었던 우리 가족은 또 이렇게 한 고비 넘고 작은 용기를 얻었다. 외래를 갈 때마다 불안해하던 아빠는 코로나 회복 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4월 18일 월요일 마지막 항암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항암도 역시나 외래로 진행되었다. 아빠의 항암이 시작되기 직전 수요일에 아이가 열이 나서 무심코 간 소아과에서 예상치 못하게 아이의 코로나 확진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아빠의 항암이 시작되기 직전, 나도 코로나를 비켜갈 수 없었다. 아빠의 항암과 연이은 가족들의 코로나 확진으로 결코 쉬운 시간들은 아니었다. 용기를 갖고 의연하게 이겨내리라 생각했던 코로나는 생각보다 만만치는 않은 상대였다. 아이는 3일간 고열이 났고, 나는 목이 타들어 가듯 아팠다. 나와 아들의 코로나를 수습하다 보니 아빠의 마지막 항암이 끝나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약 한 달 동안의 회복기를 거쳐 아빠의 면역 수치는 제자리를 찾았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아빠의 항암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하지만 항암을 무사히 마쳤다고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이식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항암 결과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마지막 골수 검사를 마쳐야 했다. 아빠는 5월 19일 정밀 결과를 진단받기 위해 골수 검사를 했다. 이때도 병실이 없어서였는지 보통 입원을 하고 진행되는 골수 검사를 외래로 진행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5월 27일. 결과가 나왔다. 16번 염색체 간 교환과 2번 염색체 이상이라는 비교적 좋은 예후를 가지고 있었던 아빠의 잔류 이상 세포는 다행히 자가 치유가 될 정도의 수치로 낮은 안정권으로 들어왔다는 기쁜 소식. 검사 결과를 듣기 며칠 전, 우리 가족은 결과가 나오는 날 대학 병원 근처 작은 호텔에서 오붓한 축하 파티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물론 아빠의 검사 결과를 듣기 전 호텔을 예약해야 했으므로 눈물 파티가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우리의 행운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그날 밤 오랜만에 모인 엄마 아빠 여동생 나 그리고 나의 아들이 함께 했던 저녁은 따뜻하고 행복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의 특성상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지 않는 이상 완치라는 개념이 없어 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몸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쉽지 않은 과제가 남았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에 끝은 있는 법. 아빠가 백혈병을 진단받은 지난해 10월부터 약 8개월 간 아빠는 삶과 죽음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누구보다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지금.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지만 소중한 하루를 얻었고, 그 하루가 있는 이상 인생은 계속된다. 아빠는 지난주 고향집으로 내려가 천천히 집 정리를 시작했고, 오랜만에 탕 목욕을 했다. 거친 풍랑을 지난 후 다시 잔잔해진 바다를 가르듯 인생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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