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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May 12. 2022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

요즘 부쩍 아이의 또래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놀이터에서 카페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마트에서 또래 아이들을 만날 때면 아이들은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큰 관심을 가진다. 아이들이 눈빛을 교환하는 것이 느껴지면 부모도 자연스레 서로 말을 건넨다. 대부분 아이가 몇 개월이냐는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이상하게 어른들은 그게 제일 궁금하다. 몇 개월인지 알아야 호칭이 정리되기도 하지만 내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은연중에 점검하듯 경쟁하듯 기어이 몇 개월인지 알고 싶다.      


몇 개월이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가 조금 더 무르익으면 아이 이름을 묻기도 한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나는 이 질문을 성급하게 하곤 했었다. 아이들의 이름이 궁금하기도 했고, 본인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아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파트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아이의 이름을 섣불리 물었다가 다음번 아이를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당황스럽다. 미안하지만 다시 물어보아야 할 것 같은데 대부분의 경우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이름 물어보기는 다음번 만남 때로 자연스레 미루어진다. 

   

형인지 누나인지 동생인지 잘 기억해 두었다가 아는 척을 해주면 좋을 텐데 이름을 잊고 나니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나는 것이 조금은 두려우면서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리고 한번 마주친 아이에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앵무새처럼 몇 개월이냐고 이름이 뭐냐고 묻는 실례를 범하지나 않을까 둔한 머리를 탓해본다. 그래서 요즘은 애초 이름을 물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로에게 생길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방어기제랄까.


어제 놀이터에서 마주친 아이는 분명히 처음 본 아이는 아니었다. 심지어 이름까지 물어본 아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깨달음은 항상 늦게 온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묻는 의례적인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질문들을 하고서야 이 아이를 언젠가 만났었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의 말투, 아이의 걸음걸이, 그리고 개월 수가 퍼뜩 머릿속을 스치면서 깨달음은 번개처럼 온다. 다행인 것은 아이 엄마도 나를 처음 본 것 같이 대했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는 챙 넓은 모자와 마스크가 서로에게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휴대폰 메모장을 켠다. 이제는 더 미룰 수가 없을 것 같다.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지 조금 난감하기는 하지만 이리저리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잘 기록해 두어야겠다.     


준서, 준석, 준우, 단우, 선우, 연우, 서아, 시아 비슷하면서도 각자 다른 빛깔을 가진 이름이다. 나는 이 많은 이름들을 잘 외울 수 있을까? 하나의 인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귀여워서 이름마저 머릿속을 돌돌 구르다가 증발되어 버리는 아기들의 이름.     


며칠 전부터 아들은 본인의 이름을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의 이름은 받침이 없어서 비슷하게나마 발음이 된다. 호명 반응을 보일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이 있다. 마치 세상에다 대고 나는 OO라고, 내가 바로 OO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스쳐 지나간 많은 아이들도 본인들의 이름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겠지. 놀이터에서 몇 번 보았을 뿐인 아줌마가 이름을 불러준다면 기분이 썩 좋을 것이다. 멋진 아줌마가 되고 싶다.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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