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 바다 May 09. 2022

나의 마음, 너의 마음, 우리의 마음

아들이 10개월 정도 되던 때였을까. 처음 게를 쪄서 이유식에 넣어주었더니 신세계를 경험하고는 그날 만든 이유식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날 이후로 가끔 게나 새우를 통째로 쪄서 이유식에 넣어주곤 했었다.     


5월이다. 꽃게철이 돌아온 것이다. 아이를 품고 있을 때는 알을 품고 있는 생선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쌍하게 느껴져 잘 먹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먹을 것이란 생각에 속이 꽉 찬 게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손질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 게는 맛있게 익어갔다. 생각해보니 게살을 밥에 넣어주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아이가 저녁밥으로 게살이 듬뿍 들어간 밥을 먹을 것을 생각하니 흐뭇하다.  

   

쇼핑몰에 다녀와서 그런지 아이는 2시간 가까이 낮잠을 잤고 낮잠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깨었다. 배가 고파 깬 모양인지 잠에서 깨어나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내 양다리에 매달려 계속 울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잘 익은 게살이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질 것이다. 게살을 발라 흰밥에 올려주었다. 씹지도 않고 뱉는다. 맛이 이상한가 싶어 직접 먹어보았더니 거부할 수 없는 맛이다. 잠이 덜 깨어 안먹는가 싶어 간식을 먹이고 다시 시도했다. 이제는 먹지도 않고 손으로 쳐낸다. 5월의 꽃게를 거부하다니.      


이렇게 맛있는 5월의 꽃게를 거부하는 아들의 입을 벌려 숟가락을 넣고 입을 꾹 닫아주고 싶었다. 한 숟가락만 제대로 맛을 보면 절대 멈출 수 없을 것이라 진심을 다해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나의 애타는 심정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윽박지를 수도 없었고 애원할 수도 없었다.      


부모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이라 했었던가. 결국 아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어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나의 저녁으로 준비해놓았던 나물들을 잘게 잘라 밥과 비벼주었다. 냉장고에 들어가 있었던 시들한 나물인데도 잘 먹는다. 삶아놓은지 이틀 지난 홍합살과 맨 두부도 함께 주었더니 잘 먹는다. 몇 번을 다시 끓인 홍합은 맛있게 먹으면서 갓 삶은 속이 꽉 찬 게는 먹지 않는 입맛이란. 최후의 수단으로 게살을 나물 밑으로 꽁꽁 숨겨 한 숟갈 아들에게 건넨다. 어떻게 알았는지 몇 번 씹더니 밥을 뱉는다. 엄마는 오늘도 좌절한다.      


저기 너무나 옳은 길이 있는데 자꾸 엉뚱한 길로 가려고 하는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의 마음은 게는 맞고 홍합은 틀리다고 말하고 있는데 너는 홍합은 맞고 게는 내 알바 아니라고 하는 이 상황을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시간이 흐른 후 게살의 맛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왜 나에게 게를 더 적극적으로 먹이지 않았냐고 억지같은 불만을 퍼붓게 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서어서 자라서 고상하게 나의 마음을 너에게 전하고, 너의 마음을 나에게 전해 우리 마음이 조금이라도 같은 곳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때가 되면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아들에겐 그저 옛날이야기로 들릴 텐데 말이다. 내가 정답이라고 우기면 우길수록 나는 점점 혼자 떼쓰는 사람이 되어갈 텐데 말이다.      


지금으로선 5월의 게맛을 전하기는 네가 너무 어리구나. 그저 잊을 만하면 식탁에 올리고, 네가 진가를 알게 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것. 지금으로선 그것 외에는 애달픈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다. 

작가의 이전글 망중한 한중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