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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Nov 06. 2022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의 의미

참 참담한 심정이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목숨들이 이리도 많이 떠났는데 원망할 곳도, 원망할 대상도 희미하다. 경찰의 미비한 사전 대비나 늑장 대응에 계속해서 비판이 가해지고 있지만 결국 돌고 돌아 그저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깊은 회한으로 남아야 하는 이 상황은 떠난 이들에게도, 남은 이들에게도 너무나 가혹하다.      


나에게 핼러윈은 너무나도 아끼던 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기도 하다. 벌써 5년 전 일이다. 핼러윈 날 오랜 숙제처럼 남아있던 발표를 마치고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그 친구의 부고를 들었다. 서른이 되던 해, 그 어린 친구는 그렇게 떠났다. 그래서 나는 핼러윈이 싫었다. 그런데 들뜬 분위기 속에서 홀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 친구가 남기고 간 마음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수많은 목숨들이 나에게 새로운 상처로 남는다.     


오늘 아빠의 골수검사 결과가 나왔다. 재발이라고 할 수도 없고, 재발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재발이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하던 교수님을 뒤로하고 병원을 바꾸어 새로운 교수님과의 외래에서 들은 진단이다. 화가 날 법도 한 그 애매한 말이 나에게 큰 안도감을 준다. 이제 중병환자의 가족이 된 지 어언 1년. 생사의 기로에서 생(生) 쪽으로 한 발짝만 더 가까이 다가서도 감사함을 느낀다. 더구나 가족들과 이별할 새도 없이 떠난 그 고운 목숨들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은 이렇게 고단하면서도 위대한 일이다. 하루하루 세상에 발을 딛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전제되어야 하는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개인의 건강, 사람들의 관심, 사회적 안전망 모든 것이 정확하게 맞물려야 개인의 하루가 담보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개인의 허약한 생명이 무상히 스러져서야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적어도 오늘 개선할 수 있는 일로 내일의 생명이 끊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본다. 하루하루를 선물 받듯 살아내고 있는 아빠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다시 이태원 참사로 이야기가 돌아온다. 단순해 보이는 이번 사고가 결코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 두 사람 모두 무겁게 동의했다. 단순히 경찰의 무성의한 대응을 문제 삼고 있는 우리나라 언론보다 낯선 시선으로 이번 사고를 조명한 외신들의 기사가 진실에 좀 더 다가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 많은 것들이 전제되어야 하듯이 이렇게 커다란 사고가 일어나기 위해서도 수많은 원인들이 겹쳐야 한다. 서울에 너무나 많은 인구가 살게 된 한국의 현실, 청년들의 즐길 거리의 부족, SNS의 유행,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 사회적 거리두기의 해제 등 느슨히 엮인 원인들이 한 곳에 응집되면서 큰 참사를 불러왔다. 우리 사회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어도 문제라고 인식된 것들을 최선을 다해 해결해 나가는 올바른 방향성을 갖기를. 언제, 어디서 그 문제들이 우연히 묶여 생명들을 날카롭게 끊어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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