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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Jan 13. 2023

노키즈 존에 대한 작은 생각

1년 만에 제주에 다녀왔다. 이 작고도 큰 섬을 다녀갈 때마다 제주는 나름의 방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남편의 외할머니댁이 위치한 구도심의 작은 골목에도 서울 상수동에 있을 법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다. 관광지의 어지러운 변화는 아니지만 오래된 구도심도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바뀌어가고 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노키즈존이 늘었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이제야 아이 엄마로서 노키즈존을 실감하게 되어서인지, 실제로 노키즈존이 많아지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여행 둘째 날, 제주의 겨울 동백을 보러 가는 길에 인터넷으로 검색한 음식점 중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 있었다. 아이가 먹기에도 부담 없는 메뉴에 제주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라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당으로 가는 길에 어떤 메뉴들이 있는지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 인터넷을 찬찬히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블로그에선가 초등학생 이상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올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음식점 홈페이지 어디에도 해당 정보는 없어 일단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식당 사장님은 바쁘신지 초등학생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는 내 질문에 “네”라는 퉁명스러운 대답만을 남기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짧은 침묵이 어서 전화를 끊으라는 압박 같아 소심한 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말았다. 인터넷 곳곳에는 음식점 사장님이 친절하다는 칭찬 일색이라 그랬던지 이상하게 좋은 친구에게 단칼에 절교를 당한 것 같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음식점이라 노키즈존을 택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다음 날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이제 제주살이 6년 차인 지인의 추천을 받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일본 가정식을 하는 식당에 차를 주차했다. 아이를 안고 차에서 내리는데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달려 나오더니 정말 죄송하지만 올해부터 노키즈존으로 운영하게 되었다며 연신 사과를 하셨다. 조금 더 친절하고 좋은 친구에게 연이어 절교를 당한 것 같은 당황스러움과 서운함이 마음속 앙금처럼 내려왔다. 이때가 1월 3일이었으니 사장님도 노키즈존 3일째인 초보 운영자였을테고, 누구보다 불편한 마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찾아준 손님들에게 설명을 해야 했을 것이다.      


요즘 어디를 가나 노키즈존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꽤 많은 카페나 식당이 노키즈존 정책을 택하고 있어 방문을 포기했던 적이 빈번했다. 이제는 일상의 경계를 풀고 휴식차 찾은 제주에서도 노키즈존 정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식당 사장님들의 고충에 공감하면서도 나이를 기준으로 출입을 막아서는 것이 근본적으로 얼굴색을 기준으로 출입을 막아서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실제로 인권위에서는 안전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13세 이하의 아동의 출입을 제한한 제주의 한 식당 점주의 행위를 “나이를 이유로 한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행위”로 규정하였다. 아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사업주들이 누리는 영업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인권위가 이러한 결정문을 발표한 것이 2017년이니 벌써 5년이 훌쩍 지난 입장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어준 인권위 결정문을 읽고도 헛헛한 마음이 들어 무심코 인터넷으로 노키즈존을 검색했더니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들로 이루어진 인터넷 카페의 게시글들이 많이 보였다. 그곳에는 노키즈존을 택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장님들의 글과 함께 아이들과 부모들이 얼마나 가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는지 고충을 토로하는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 글을 읽고 있자니 손님은 몰려들고, 신속하게 치워서 다음 손님을 받아야 하는데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음식물을 닦고 있을 매일매일의 일상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게시판에는 아이와 아이 부모 일반에 대한 분노가 더러는 보이지 않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표출되어 있었다. 그 분노가 정당한 것은 아니지만 손님으로 방문하여 몇 번 거절당한 것이 전부인 나와 생업을 걸고 노키즈존 선택의 기로에 선 사장님들의 고민의 깊이와 절절함은 애초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위 결정문을 읽고 석연치 않았던 느낌이 들었던 것도 출입을 거부당한 아이와 아이의 부모가 느꼈을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법리적으로는 우위에 서 있지만 노키즈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점주들의 현실적 어려움의 무게는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노키즈존은 법적, 인권적 당위와 현실적 고충이라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오롯이 점주들의 선택에 내맡겨진 방식으로 봉합되어 있는 임시방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거절당한 사람 모두 불편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돈가스집을 운영하는 한 사장님이 올린 사진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아기 의자 밑으로 흘리고 간 음식물과 바닥에 내팽개쳐진 숟가락과 포크 사진이었다. 사장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개념을 상실한 부모라는 의견부터 저 정도는 용인해주어야 한다는 의견까지. 개인적으로는 큰 음식물 조각을 휴지로 한번 훔치고, 숟가락과 포크는 주워주는 정도가 상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런 이야기들을 사장님들과 손님들이 기탄없이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들께 노키즈존을 왜 선택하셨는지 물을 수 있다면, 아이의 부모가 어느 정도까지 주의를 해주면 노키즈존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 조금 더 자세히 물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선택지들이 있다. 노키즈존을 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무거운 선택지 대신 아이의 출입 자제를 요청하는 시간대를 설정하여 정확하게 공지해 놓는다든지, 아이를 동반하는 부모들에게 추가적인 비용을 청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는 누군가 아이와 부모, 그리고 사장님 모두가 그럭저럭 만족할 수 식당 예절의 수준을 세세하게 정리해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조금만 고민해 본다면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고유한 권리를 찾을 수 있고, 사장님들도 소중한 고객을 잃지 않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노키즈 존으로 인해 아이를 동반한 사람, 아이를 동반하지 않는 사람, 노키즈 존을 택한 점주, 그렇지 않은 점주들 사이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감정의 골은 깊어진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감정을 걷어내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작은 균형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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