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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Jan 30. 2023

양곤으로 가는 길

2월 중순, 미얀마 양곤으로 간다. 복직과 함께 해외 발령으로 2년간 양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2년 만의 복직이라는 소회에 젖기도 전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덮쳐오는 기분이다. 하지만 미지의 땅은 언제나 새로운 설렘과 기분 좋은 긴장감을 준다. 물론 이번에는 두 돌을 이제 막 지나게 될 아들과 이 쉽지 않은 나라에서 정착을 함께해야 한다는 대단한 변수가 있지만 말이다. 양곤으로 가는 길. 하나 둘 헤쳐나가고 있는 이 난관들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한 추억으로 남을 테니 안주거리 삼아 들춰보게 될 날을 기약하며 조금은 멀찍이서 기록해두고자 한다.     


1. 만만치 않은 중고차 사기     


발령 첫날부터 미얀마에 먼저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얀마 정착에 가장 큰 난관을 차량으로 꼽았다. 미얀마에서는 중고차가 귀하디 귀하고, 가격도 어마무시하니 되도록 중고차를 가지고 올 수 있으면 준비해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타던 오래된 소나타를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의를 하니 2023년을 기준으로 2년 이내, 즉 2021년 이후부터 생산된 중고 차량만이 반입이 가능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차량을 자체 생산하지 않는 나라에서 중고차 반입을 이렇게 엄격하게 규제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때부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중고차를 사서 갈 것인가, 아니면 미얀마 현지에서 차를 살 것인가. 하지만 미얀마 중고차 시세는 생각보다 훨씬 높았고, 다행히 가구들이 구비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 이삿짐이 많지 않아 중고차를 구매해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2년 이내 생산된 중고차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좋지 않은 도로 사정과 긴 우기를 고려할 때 승용차보다는 SUV를, 불안정한 경유 수급 사정을 고려할 때 경유차보다는 휘발유차를, 현대차가 진출해 있기는 하지만 가능하다면 부품 수급이 쉬운 일본차를 구하는 것이 좋다는 현지 직원들의 조언을 듣고 이 조건에 부합하는 차를 찾아 나섰다. 지인이 소개해 준 중고차 딜러분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 중고차 시장이 있다는 수원으로 가 보았는데 끝도 없이 펼쳐진 중고차들 가운데서 우리의 조건에 맞는 차는 겨우 3-4대 정도였다. 그중 마음에 드는 차가 딱 한 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에 등록된 시점은 2021년 3월이었지만 일본 현지에서 생산된 시기를 재확인해보니 2020년 11월이었다. 이런!     


그렇게 우리 마음의 1순위였던 차가 선택지에서 빠지게 되자 남편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가 선택지를 가지고 고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할 수 없이 허겁지겁 남아있는 선택지를 다시 보면서 가장 안전한 2022년에 생산된 중고차를, 새 차 가격과 별반 차이 없이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차량 판매자 측의 의향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새 차를 사서 바로 외국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은 우리나라 국내 규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니 이 차가 우리에게 온다면 그냥 새 차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듯하다.      


2. 꼼꼼히 준비하자 아이 짐!     


6개월로 잡았다. 일단 이삿짐으로 가져갈 아이의 짐을 계산할 때 너무 임박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길지는 않은 정착 기간으로 말이다. 6개월을 기준으로 계산한 아이의 기저귀(100만원치 아이 기저귀를 시원하게 결재했다), 바디 워시와 로션, 비상약, 과자, 마스크 등등 빠지는 것 없이 꼼꼼하게 준비해야 할 텐데 봉인된 짐 상자는 늘어나는데 걱정도 함께 늘어간다. 수도 없이 즐비한 육아용품들이 다음날이면 배송되는 곳에서 살다가 말도 글도 낯선 땅에 가려니 고민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직 잘 때 우유를 먹는 아이를 위해 우유도 충분히 준비해 가야 할까 하다가도 우유 정도는 현지에서 그냥 먹여도 되지 않을까 하며 소소하지만 까다로운 고민들을 계속하고 있다. 6개월치를 내다보고 준비한 내 짐은 작은 박스로 1박스가 될까 말까 한데 아이짐은 기저귀만 해도 큰 박스로 4박스에 육박한다. 아이 장난감까지 더해지면 거의 모든 짐이 아이의 짐으로 뒤덮이게 될 것 같다. 며칠 전, 아이가 다니게 될 어린이집 원장님과 짧게 메일을 주고받다가 낮잠이불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꼼꼼히 준비한다고 해도 하나 둘 미처 챙기지 못한 아이의 짐들이 생길 텐데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기본적으로 먹고, 자고, 싸는데 지장이 없으면 된 거라고. 아 맞다! 아이 변기도 챙겨야 하는구나!     


3.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제일 걱정되죠     


질병관리청 홈페이지는 꽤 유용했다. 이것저것 부임 준비로 분주한 틈에 쌍둥이 딸아이들을 키우는 아이 엄마이자 미얀마에서 근무 중인 직원이 공수병 예방접종을 빨리 맞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부임 안내서에 말라리아 등 풍토병에 관한 정보들이 있었지만 덮어놓고만 싶었던 쉽지 않은 숙제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3번의 공수병 예방접종을 완료하려면 1달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바빠졌다.   

  

국립중앙의료원 해외여행클리닉을 통해 접종을 하면 감염내과 전문의들이 나라별 맞춤 상담을 해준다는 말에 의료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오랜 대기시간 끝에 연결된 상담원은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갑자기 늘어난 해외 여행객들로 공수병 백신 수급상황이 불안정하고, 그나마 가장 빨리 접종할 수 있는 시기가 한 달 후라는 것이다. 백신 하나 맞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풍토병 백신은 접종이 가능할는지, 아이의 생명을 담보로 해외 근무를 하는 것이 맞는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대학병원 위주로 잔여백신이 있는지 찾아보라는 상담원 말에 아이가 태어난 신촌 세브란스에 연락을 했다. 다행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잔여백신 찾기는 싱겁게 끝났다. 가능한 한 빨리 3일 후로 예약해 주겠으니 와서 상담을 받고 접종하라는 것이다. 나는 감염내과로, 아들은 소아감염면역과로 같은 날 예약을 잡아주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님들과의 상담 결과, 나는 공수병, 콜레라, 장티푸스 예방접종을, 아이는 공수병 예방접종만 맞기로 하였다. 어쩐지 나만 갑옷을 입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소아감염면역과 교수님이 두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공수병 외 예방접종을 하는 것은 위험을 수반할 수도 있다고 하여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미얀마 현지에 정착하는 몇 달간 만이라도 아이에게 첫 이유식을 먹이던 그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아이의 먹거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사히 접종을 맞고 왔는데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다 잘될 거야를 호기롭게 외치며 출국 준비를 해왔는데 감염내과 교수님으로부터 말라리아, 장티푸스, 콜레라 예방을 위해 지켜야 할 사항들을 듣고 나니 혼자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 기분이다. 취약한 의료 체계에 내던져진다는 것은 안전망 없이 외줄을 타는 기분이다. 아이가 건강히 잘 적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4. 가장 큰 난관은 역시나 사람!     


다행히도 남편은 나와 아들이 미얀마에 정착하는 1달 반 동안 우리와 함께 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이후 한 달 정도는 시어머니께서 나머지 정착을 도와주실 계획으로 준비 중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나와 아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모험을 시작해야 한다. 두 돌이 지나도록 아직 어린이집에 가고 있지 않은 아이는 생애 첫 사회생활을 미얀마에서 시작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다. 그리고 나와 아이가 어찌할 수 없는 공백시간도 생긴다. 아이는 아마도 내 출근과 맞추어 등원을 하고, 3시 반 혹은 4시에 하원을 할 텐데 그 사이 시간 동안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미얀마에서 영어가 가능한 현지 도우미를 구하는 일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직원들의 말에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다행히 싱가포르에서 20년간 도우미로 일해오시던 미얀마분을 소개받아 간단히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은 후 함께 해보기로 결정했다. 육아와 가사 일부를 책임져 줄 분을 구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면서도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산후도우미 외에 달리 도우미와 함께 일해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일단 도우미분이 성실할 것인지, 나와 성향이 잘 맞을 것인지 전반적인 고민부터 몇 시에 출근하고 몇 시에 퇴근하는 것이 좋을지, 상주하는 것이 더 나을지, 집안일은 어떻게 분담해야 할지 등 현실적이고 작은 고민으로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리고 아마 이런 고민들은 미얀마에 살게 되면서 계속하게 될 것이다. 운전이 결코 쉽지 않은 미얀마에서 운전기사를 별도로 채용해야 할지, 채용한다면 어떤 조건으로 해야 할지, 갑자기 기사가 출근을 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나도 어느 정도 운전을 배워놓아야 할지 등등 앞으로 무궁무진한 고민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서로 즐겁게 맞춰나갈 수도 있으니 열린 마음으로 기대를 해본다. 미얀마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양곤으로 가는 길. 쉽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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