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돌이 되어가는 아들은 제법 말을 한다. 아들을 보면 얼마 되지 않는 단어로도 부족함 없이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때로는 알아듣지 못할 말로 중얼거리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언어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하고 있다.
며칠 전, 다음날 강추위가 이어진다는 말에 조바심이 났던 나는 저녁 무렵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에 나섰다. 또 며칠간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저녁 공기라도 실컷 쐬고 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아파트 공동현관 밖으로 나선 순간 후회했다. 내일 오후부터 시작된다는 강추위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준비하고 나온 시간이 아까워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시소라도 한번 타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에게 “추워?”하고 물었더니 “보조개가 추워. 입도 추워”라고 대답한다. 세상에! 사십 평생 보조개가 춥다는 신박한 문장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아들의 어휘사전에 “볼”이라는 단어가 있었더라면 이런 귀여운 문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추운 날 너무 크게 웃었던지 입이 얼얼했다. 결국 시소 몇 번만 타고 10분 만에 집으로 후퇴하였으나 그날 저녁 산책은 그 신박한 문장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아이가 오감을 활짝 열고 어른들의 언어를 모방하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다. 그리고 그 모방의 과정에서 살짝 주파수가 엇나간 본인만의 문장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내가 “그럼 10분만 놀다가 자러 가자” “10분만 있다가 할머니 집에 가자” 라면서 무심코 “10분만”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던 모양이다. 요즘 아이는 “10분만”과 “이게 마지막이야”를 남발하면서 엄마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욕구를 허겁지겁 채우고 있다. 어제는 아이가 간식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아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했더니 “10분만 먹자. 10분”이라고 대답한다. 그때까지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10분만”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정황상의 맥락은 읽었으나 마지막 조준이 잘못된 아이의 문장은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아이는 금방 자란다. 아이가 처음 두 발로 서서 걸었을 때 그 신기하고도 놀라운 감동이 아직 마음에서 가시지 않았는데 벌써 뛰지 말라고 아이에게 면박을 주는 아들맘이 되었다. 아마도 언어로 막 소통을 시작하려 하는 이 단계도 짧게 지나갈 것이다. 많지 않은 단어를 늘이고 늘여서 자신을 표현하는 문장에 턱없이 가져다 쓰는 이 신선하고도 귀여운 아이의 언어생활이 금세 끝나버릴 것 같아 벌써부터 아쉽다. 아이가 어제 했던 말, 오늘 하는 말, 내일 하게 될 말, 모두모두 마음에 새기고픈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