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실감하기 전에 미얀마에서의 첫 주가 끝나가고 있는 기분이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내 기나긴 휴직의 끝도, 복직과 함께 시작된 미얀마에서의 생활도 아직은 남의 일처럼 낯설기만 하다. 2월 중순 수요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한국과 미얀마 간에는 생각보다 많은 직항이 있다. 일주일에 4편의 직항이 있으니 이틀에 한 번씩은 직항이 운항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일주일에 한 편, 수요일마다 운항하는 대한항공을 타기 위해 탑승 게이트 앞에 섰는데 그곳은 이미 작은 미얀마였다. 탑승을 준비하고 있는 미얀마 승객들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사람이 많아 신이 난 아이는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다녔는데 물이 먹고 싶었는지 미얀마 청년들이 먹고 있는 생수병을 가리키며 먹고 싶다고 했다. 미얀마 삼촌들은 망설임도 없이 새 생수병을 하나 건네주었고, 아이는 맛있게 물을 들이켰다. 이래저래 나도 아이도 기분 좋게 탑승을 준비했다.
가장 걱정했었던 아이와의 첫 장거리 비행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낮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아이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2시간 내내 잠을 잤고, 일어난 후에는 밥을 먹고 비행기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도착한 양곤 국제공항은 내 예상과는 달리 굉장히 크고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공항 안의 사람들은 우왕좌왕했고,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대체로 일하는 사람이나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나 밝고 활기가 넘쳤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저녁 9시가 훌쩍 넘은 저녁시간이었는데 큰 명절에 마을 축제에 온 듯 많은 인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찾고 있는 간절한 눈빛들이 정겹고 따뜻했다. 사람들 구경에 여름으로 바뀐 후텁지근한 공기를 잊을 정도였다. 그렇기도 했거니와 이곳도 나름 겨울이라 딱 기분 좋을 만큼의 이국적인 습기가 느껴졌다.
거리에는 차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거리의 풍경은 여느 동남아 지역의 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만 보아서는 2년 전, 쿠데타가 있었고,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릴 것 같았다. 호텔방에 들어와 녹초가 된 아이를 재우고 나도 다음날 출근을 위해 최소한의 정리만 하고 잠이 들었다. 기분 좋게 숙소로 들어섰는데 막상 자려고 하니 어쩐지 설레기도, 불안하기도, 외롭기도 한 밤이었다.
다음날, 2년 만의 공백을 뒤로한 첫 출근. 기본적인 업무 시스템은 바꾸지 않았지만 낯선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메신저와 업무 시스템에 접속하고, 업무 인수인계를 받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일과 사람들이 주는 긴장감이 활력이 되었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의 일과 사람들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감사했다. 출근을 하면 낯선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퇴근을 하면 어떤 식재료들을 어디서 사야 할지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조금씩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낙관이 자리 잡았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도 기꺼이 한 달 반이라는 긴 시간을 내어 준 남편의 존재가 컸다. 남편이라는 큰 버팀목이 있을 때 이곳 생활에 빨리 적응하고, 익히고, 익숙해지는 것이 지금의 가장 큰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