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되어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을 때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 취직을 하여 첫 월급을 받게 되었을 때 나는 완연히 어른이 되어 있었다. 경제적 독립은 실로 거주의 독립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독립된 정체성을 가져다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새로운 가족을 꾸렸을 때 나도 어른다운 어른이 되었다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엄마와 영원히 이별을 한 지금, 나는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결국 내가 어른이 되었다 생각한 것은 그렇게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를 잃고 엉엉 울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를 잃고 이렇게도 서럽게 우는 아이가 마음속에 있는 이상, 그저 나는 겉만 늙어가는 어른이 되겠구나.
아이와 함께 거미에 관한 책을 읽었다. 암컷 거미가 수컷거미를 만나 구애를 하고, 사랑을 나눈 다음 알을 낳고 새끼 거미가 태어난다는 뻔한 자연 도감.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직도 작디작은 거미들이 날개도 없이 독립을 위해 거미줄을 타고 날아간다는 사실이다. 아이와 같이 책을 읽는데 또 마음이 울렁인다. 알에서 깬 지 일주일 정도가 되면 거미들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실젖에서 거미줄을 뽑고 바람에 날린 다음 그 거미줄을 타고 살 곳을 찾아간단다.
매번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나의 순리라는 것은 그저 알량한 말장난에 불과했다.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했으면서도, 내 가정을 꾸렸으면서도 엄마를 영원히 곁에 두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은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자연의 법칙은 나를 어른이 돼라 하는데 내 마음은 계속 아이로 남겠다 한다.
과연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부모가 정성스레 쌓아놓은 버팀목을 뛰어넘어 누군가를 위해 버팀목을 만드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아이를 위해 열심히 버팀목을 쌓다가도 잃어버린 엄마를 생각하면 금세 아이가 된 것처럼 기존의 버팀목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나는 과연 어른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누구든 어른이 되었다, 아이가 되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반복하면서 몸과 마음이 늙고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게 현실적인 인생이 아니겠나 싶다.
굳이 애써서 어른이 되려고 하지 않는 것, 어른이 되었다 아이가 되었다 하는 알량한 내 마음을 그저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것,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둘씩 마음에 묻고 더 자주 아이가 되지만 괜찮다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 세상에는 내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들과 슬픔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는 것,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 많은 어른들은 어떤 슬픔들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쯤 들춰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는 것이 곧 업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아프게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