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 바다 Sep 28. 2023

나의 애도

요즘은 엄마가 너무 가여워 슬픈 것인지, 엄마를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괴로운 것인지, 엄마 없이 남겨진 내가 불쌍해서 울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음엔 항상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남겨진 사람들은 애도 기간을 갖는다고 하는데 솔직히 애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를 떠나보내기 직전, 너무나 기가 막혀 울었고 또 울었다. 엄마를 떠나보낸 후에도 울었고, 울음과 울음 사이 멍한 상태가 끼워져 있는 듯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직장으로 복귀하면서 그런 다짐을 했다. 일단은 최소한의 일상은 유지하자고. 매일매일 빼먹지 않고 직장에 나가자고. 그 대신 마음이 힘들 땐 울고, 잠이 올 땐 앞뒤 생각하지 말고 자자고. 되도록 오래 자자고. 그리고 되도록 괜찮은 척은 하지 말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직장을 빼먹고 혼자 그저 웅크리고 앉아 조용한 곳에서 울고 싶었다. 아침이 밝으면 출근 채비를 하고, 출근을 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보고 내가 온전히 슬퍼하며 울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한번 일상을 잃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집에 가고 싶어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저 버티었다. 괜찮지 않았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9시 반이면 모든 직원들이 모여 주간회의를 한다. 큰 행사가 없는 이상 6개월 동안 매주 해오던 회의이다. 그런데 엄마를 보내고 회사에 복귀 후 첫 월요일. 갑자기 회의가 9시에 시작하는지 9시 반에 시작하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해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는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우주가 무너졌는데 계속되는 일상이 너무나 잔인했지만 또 나의 우주를 지켜준 것 또한 일상이다. 그렇게 일상을 포기하지 않고 애도하는 법을 차츰 익혀나갔나 보다. 점심 약속이 없는 날에는 사무실에 앉아 사별한 사람들의 무수히 많은 동영상들을 찾아보며 펑펑 울었다. 하나하나의 죽음의 무게를 어떻게 가늠하겠냐만은 나보다 무거운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외로운 마음을 달랬다. 정말 형식적으로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차마 괜찮다고 말할 수가 없어 엄마의 죽음을 공유하고는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아파트 앞을 맴돌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토요일 새벽에 양곤 시내에 있는 쉐다곤 파고다를 들러서 기도를 드렸는데 의외로 마음이 편해졌다. 종교가 없는 터라 기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 누구나 갈 수 있고, 적당히 종교적 색채가 있는 관광지인 쉐다곤 파고다를 찾았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 역사가 오래된 금빛 탑으로 오르는 수많은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 마치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맨발로 오르기에는 지저분하고 축축한 느낌은 여전했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왠지 반은 현실에, 반은 하늘에 걸쳐 있는 듯한 쉐다곤 파고다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그다음부터는 매주 토요일마다 그곳을 찾았다. 엄마가 있는 곳에 조금 더 가까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를 잃고 처음 쉐다곤을 방문하던 날, 마스크를 가져갔다. 눈물 콧물을 너무 많이 흘리면 흉할 것 같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얇은 마스크를 보호막 삼아 정말 실컷 울었다. 그다음 주에도 마스크 안에서 울고, 울다가 외국인인 나를 보고 잽싸게 다가오는 현지 가이드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서로 당황하여 눈을 황급히 돌리고는 했다. 후줄근한 차림의 중년의 아줌마가 더운 여름날 마스크를 쓰고 뻘개진 눈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꽤 신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반복할 수 있는 애도 행위가 있다는 것이 꽤 큰 힘이 되었다.      


영영 벗을 수 없을 것 같던 마스크도 이제 쓰지 않는다. 마스크 없이 당당하게 쉐다곤의 수많은 계단을 밟는다. 물론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순간이 있지만 이제는 오래 울지 않고 엄마의 행복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우리 아빠에게 조금 더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엄마에게 빌기도 한다.      


슬픈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 애도라면 아주 오랫동안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데 희망을 가지고, 감정을 부여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 보내려고 한다. 마음의 검은 그림자도 애써 털어내려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있다. 물조차 넘기기 어려워했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 물을 마실 때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고, 숨을 참는 것이 너무 슬프고 절망스러워서 다시는 수영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무겁디 무거운 슬픔에서는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된다.     


조금씩 나아지다 정체되고, 또 수렁에 빠졌다 나아지기를 반복하는 나의 애도는 현재 진행 중이다. 

이전 05화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