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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Sep 28. 2023

우리 동생

한동안 나만의 슬픔에 빠져 다른 가족들의 아픔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사랑하는 짝꿍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아빠의 슬픔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마도 이 세상 누구보다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사람은 아빠일 것이다. 매 순간 함께 했었던 두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 동생의 슬픔을 헤아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 나는 마흔이니까 괜찮아” “40년이나 함께 했잖아” 내 마음이 너무 슬퍼질 때면 주문처럼 외우던 마흔인데 우리 동생에게는 그렇게 외칠 마흔이 없다. 나보다 3년 일찍 엄마를 떠나보낸 셈이다. 2021년 10월, 아빠가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고 나서 우리 가족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정말 완벽하게 기쁜 날이 찾아와도 마음 한구석에는 헤어짐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2022년 7월 엄마가 대장암 진단을 받을 즈음. 동생 뱃속에서는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가장 행복하고 축복받아야 될 시기, 가장 마음이 편해야 할 시기에 동생은 암환자 카페를 부지런히 기웃거리며 백혈병과 대장암에 관련된 정보를 공유했다. 비록 옆에 남편이 있었지만 그 무게를 감당해야 했을 동생이 새삼 가엽고 애처롭게 느껴진다. 4일장을 하는 내내 5개월 된 조카는 내내 장례식장에 딸린 작은 쪽방에서 놀고, 자고, 먹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장례식장에 온 손님들이 한번씩 안아주다보니 하루가 금방 갔다는 사실이 육아맘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 동생은 그렇게 혹을 단 채로 장례를 치뤄냈다.  


지금도 나는 외국에 나와 있고, 아빠의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준비해야 하는데 참 해외살이가 이처럼 길고도 숨 막히게 느껴진 적이 없다. 엄마의 사망신고부터 보험금 청구까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죽음의 무게와 전혀 맞지 않는 건조하고 차가운 행정절차를 혼자 씩씩하게 마무리 지은 그 마음은 어땠을까 조용히 상상해 본다.     

그래도 동생이 꽤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가끔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가벼운 공황장애 증상이 있다고 했다. 마음이 덜컹했다. 그럴 만도 하다. 밝은 마음으로도 어린아이와 하루종일 시름을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마련인데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어린아이와 단둘이 남겨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래도 지금은 조혈모세포 이식을 앞둔 아빠와 아이를 키우는 동생이 서로의 끼니를 챙기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둘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끼리의 조합이 결코 행복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애처롭지만도 않다. 오래 가야할 애도의 길에 서로가 서로의 벗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아빠가 항암 중이었던 관계로 아들 돌잔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빠를 병원에 보내고 시댁 어른들과 사진을 찍고, 밥을 먹었던 돌잔치가 참 외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 첫 번째이자 마지막 조카가 될 쪼꼬미의 첫 번째 생일은 꼭 함께 축하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친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 이모부, 사촌형아 정도면 동생에게도, 조카에게도 괜찮은 구색이지 않을까 싶다. 완전히 행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럭저럭 즐거운 조카 돌잔치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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