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들지요? 엄마를 보내고 나서는 세상에 내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슬픔이 수없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많은 사람들은 나이 마흔에 맞는 부모의 죽음은 조금 안타깝고 이르지만 언젠가는 치러내야 할 일이라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런데 그 죽음이 이렇게나 아프고 애달픈데 세상에 경험해서는 안될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네요.
지금 아빠의 마음도 내가 감히 헤아릴 수는 없을 거 같아. 괜찮은 거 같다가 모든 것이 허망하고, 보고 싶다가도 원망스럽고. 내 마음의 몇 배를 더 해야 아빠 마음이 될지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 모든 슬픔이 결국엔 살아있는 사람 자신을 위한, 혹은 자신이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사후세계가 있다면 엄마는 이승의 삶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 사후세계가 없다면 속세에서의 괴로웠던 모든 감정들과 모든 인연들을 훌훌 털고 가버린 것인데 그렇게 슬퍼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더구나 엄마는 주어진 시간을 참 열심히 살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쉼터 같은 사람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인생을 이렇게 잘 마무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되는 거라고.
요즘은 엄마를 내 마음속에서 어떻게 간직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곤 해요. 나도 이제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으니 나중에 내 아들이 내가 떠난 후, 나를 어떻게 간직해 주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니 의외로 단순한 거 같아. 내가 떠난 후에도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주는 것. 그리고 가끔 나를 생각해 주되 슬픔보다는 그리움과 애틋함 그리고 자랑스러움으로 되돌아봐주는 것. 그리고 나는 엄마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던 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는 것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아빠도 엄마가 아빠를 먼저 떠나보냈다면 어떻게 아빠를 기억해 주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이미 그런 생각을 수없이 많이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아빠는 지금 엄마를 잘 기억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슬프게 울기도 하고, 또 애달파하기도 하지만 또 좋은 기억들을 잘 기억하면서.
때로는 엄마 아빠의 큰 기대가 버겁기도 했지만 그게 또 내 삶의 원동력이었고, 돌이켜보면 나도 그 기대가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말로 다 할 수 없이 큰 사랑을 받았고, 뜨거운 응원을 받았으니 나는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난 것이 내 인생 가장 큰 축복이라 생각해요. 특히나 빈틈없는 한국 사회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살고 자유롭게 숨 쉬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아빠에게 너무나 감사해요. 판에 박힌 아빠가 아니라 이상하고 독특하면서 귀여운 아빠라서 참 좋았습니다. 엄마에게는 하지 못했지만 아빠에게라도 이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
큰 수술을 앞두고 참 많은 생각이 들 것 같네요. 나는 생각을 단순히 정리했어요. 무조건 잘된다. 아빠는 적어도 10년은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정말 잘 안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일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리고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을 모으는 일 밖에 없는 것 같아서 하느님에게도 부처님에게도, 엄마에게도 아빠의 10년을 구걸하고 있어요.
오늘 저녁에 우연히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탁구를 치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 그 모습이 어찌나 부럽고 좋아 보이던지. 이식 잘 받고 건강 잘 회복해서 바다랑 부야랑 탁구도 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엄마 이야기도 같이 나누고 그렇게 행복한 시간 보내자 아빠.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