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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Sep 29. 2023

우리 엄마의 마지막 수술

언젠가는 써야 할 글이다. 하지만 영원히 너무나 아픈 글이 될 것이라는 걸 알기에 많이 두렵고 슬프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두 부류로 보는 집착이 생겼다. 엄마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더 나이가 들어버린 노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부럽고 또 부럽다.      


울컥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색칠하기 책에 그려진 할머니, 할아버지 그림이 그리도 내 마음을 아프게 도려낼지 나는 정말 몰랐었다. 엄마가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공간에서 살아가는데도 엄마의 흔적은 도처에 있다. 엄마가 사준 속옷과 원피스, 엄마의 사진, 엄마의 레시피, 그저 모든 것이 엄마 그 자체인 듯 생생하다.     


엄마는 1년 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발견 당시에는 이미 암이 간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건강한 체질을 타고나서 그런지 자각 증상은 거의 없었고, 사소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대장에 조그마한 혹이 보인다는 소견부터 시작하여 간을 뒤덮을 만큼 암덩이가 크며, 수술이 불가하다는 진단을 받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명 바닥을 디뎠다 생각했는데 또 끝도 모를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엄마는 씩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라서 자식인 나에게 씩씩한 모습만 보여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강해 보이지만 여리디 여린 엄마가 혼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지, 얼마나 무서웠을지 그땐 미처 몰랐었다. 아니 우리 엄마는 씩씩할 거라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항암 경과도 좋았는데 항암 10회 차가 넘어가자 서서히 항암약에 내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간에 전이된 암이 너무 커서 항암을 거듭하는데도 수술이 불가하다는 진단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암환우 카페에서 종종 보았던, 간 전이 수술을 적극적으로 하는 교수님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다. 교수님 이름을 검색해 보았더니 얼마 전 서울에서 창원으로 병원을 옮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 일단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그랬던 걸까. 귀한 교수님을 우리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보내 주다니.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겁이 많은 엄마는 의외로 아빠의 설득에 잘 응했다. 살아보겠다는 용기를 내어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엄마와 아빠는 올해 6월 초, 창원으로 내려가 첫 상담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CT 분석과 간 기능 검사를 모두 통과하여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아빠가 너무나 기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며 엄마가 별스럽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수술 날짜는 빠르게 잡혔다. 이미 항암을 10번 넘게 진행한 상태라 간이 푸석해지고 있었고, 그렇다고 항암을 멈추게 되면 암이 자랄 수 있으니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교수님의 말이었다. 그때는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고, 기쁠 뿐이었다. 우리 엄마가 수술을 받을 수 있다니! 그리고 잘 관리하면 진단받은 2년 여명이 아닌, 5년 아니 어쩌면 10년 이상도 건강하게 살아볼 수 있다니. 고난이 있었지만 더 겸허하게 살라는 교훈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웬만한 전문가들도 꺼리는 고난도 수술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우리 엄마는 잘 견디겠거니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수많은 성공 사례들이 있으니 우리도 그 사례 중 하나가 되겠거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알프스 수술은 2차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1차 수술 시에는 우선 간을 묶어 두 부분으로 분리하고 암덩이가 몰린 쪽을 절제한다. 2차 수술 시에는 간을 최대한 키운 후 나머지 부분에서의 암덩이와 원발암인 대장암을 동시에 제거한다. 수술 자체도 까다로운 수술이거니와 1차 수술과 2차 수술의 간격을 2~3주 밖에 두지 못한다는 면에서 환자에게도 대단히 부담스러운 수술이다. 이렇게 크고 힘든 수술을 앞에 두고도 엄마를 포함한 우리 네 가족은 희망과 기쁨에 차서 수술 후 계획들을 잔뜩 세워놓고 있었다. 나도 엄마 수술 후 회복기를 생각해 8월 말 정도 휴가를 받아 2주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6월 26일 첫 수술. 회복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7월 11일 두 번째 수술. 수술 직후인 7월 12일 엄마가 잘 이겨내고 있다는 아빠의 문자를 끝으로 거뜬한 체력으로 무리 없이 회복할 거라 의심치 않았던 우리의 기대는 조금씩 무너져갔다. 아마 간병인과 교대로 간병을 하던 아빠는 우리보다는 일찍 직감했을 것이다. 엄마의 상태가 정상궤도에서 약간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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