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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Nov 29. 2023

이제 다시 나의 이야기

언제부터였을까. 나 자신에 관한 생각, 이야기들이 실종되었다. 타인에 대한 생각과 걱정도 결국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결국 나의 중심은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랜만에 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마흔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의 나는 슬프게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위축되어 있고,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우울에 항상 발을 담그고 있다. 2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직장은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고, 육아 전쟁과 비교하면 안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머릿속에서 꿈꾸던 자신감 있는 중간관리자로서의 모습과는 영 딴판인 나의 능력과 모습에 자꾸만 작아진다.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신감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크고, 즐기는 마음보다 부담감이 커져 또 마음은 한번 더 작아진다. 특히나, 옆에 있는 동료의 유창한 영어 실력, 조리 있는 말솜씨, 전략적 사고는 내가 늘 갖고 싶었던 것들이 아닌가! 그리고 나의 쪼그라든 마음을 가장 먼저 내보였을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것이 나를 더 위축되게 한다.     


다행하게도(?) 스무 살의 나는 지금의 나와 꼭 닮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 힘든 시간이 나에게 크나큰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불안하지만 평정심을 가지고 나의 위축된 마음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대학 그리고 사회라는 큰 세계와 마주하였을 때 느꼈던 그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갖추어 놓은 것이 없는데 모두가 나보다 앞서 나가고 있고, 어디론가 바쁘게 달려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때 나의 마음은 폭풍 속 들꽃보다 더 심하게 흔들렸었던 것 같다. 어디든 달려야지 하는 투지에 가득 차 있었지만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몰라 혼란을 겪었다. 다행히도 그때 천천히 책을 읽으면서 혼란과 불안을 극복해 나갔던 것 같다. 나는 빠르지 ‘않으니’(습관적으로 빠르지 ‘못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만 이제는 나도 내 속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천천히 가되, 내가 생각하는 바른 길을 가고 싶었고, 그 바른 길에 이르는 가장 좋은 안내자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책 읽기로 지식을 체계화시키지는 못했지만 마음의 위안과 나에게 맞는 삶의 자세를 배웠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두 번째 스무 살. 그 당시보다 목표로 향하는 투지는 약해졌고, 내가 책임져야 할 식구들은 늘어났으며, 마음을 기댈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스무 살 때의 아프고 소중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경험 후에 조금 더 성장한 내가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다만, 스무 살 그때보다 나아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적 허영심을 버리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읽으며 이 불안한 시기를 무사히 건너가고 싶다는 것. 갓 스물이 된 나는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해 고민하는 법을 연구하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접하고 너무나 신기하여 사회학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아마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없다면 몇 번 곱씹어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그 노력이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몇 가지 질문을 풀어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이가 들고, 엄마를 잃고, 직장에서 자신감을 잃은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은 역사와 관련된 것이다. 거창한 역사서는 아니고 미얀마 역사에 관한 얇은 책이라든지 흥미를 위주로 쓰인 세계사 책을 읽어보고 있다. 긴 세월 동안 한 세대는 다른 세대로 이어져왔고, 그렇게 이어진 몇 백만 년의 세월이 흘러나와 닿았고, 또 찰나와 같이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허무하지만 이상하게 큰 위안이 된다. 그 기나긴 세월을 나름대로 엮어보며, 공부하여 티끌만 한 깨달음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성공한 인생이고 말이다.      


위축된 마음은 서서히 제 모양을 찾아갈 테,고 언젠가는 또 쪼그라들 테지만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불안감과 긴장감을 동력 삼아 영겁의 세월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어차피 나는 티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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