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대방을 존중하면 상대방도 나를 존중할 줄 알았다. 성인이 된 후 알게 된 모든 사람에게 말을 놓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서로의 거리와 위치를 지켜주기 위한 내 방식의 노력이랄까. 하지만 요즘은 배려한 만큼 배려받지 못한다는 걸 느낀다. 배려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그보다는 각자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기에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직업병적 간섭과 잔소리는 나도 상대방도 피곤하게 만든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 해 봤자 그는 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조언이나 도움 따위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아니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렸을지도 모르고, 애초부터 귀로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누군가의 삶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만 욕심내면서 내 것을 지키면 된다. 내 공간 안에서 내 마음대로 보내는 건 누구에게도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내가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과한 배려와 친절을 더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존중하고 배려하면 된다. 내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 세상의 전부는 나다. 바깥으로 향한 시선을 내게로 돌리면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쉽게 상처받고 실망하는 작은 마음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지, 그들이 내게 원한 건 아니다. 사람과의 일이 가장 어렵고 조심스럽고 서툴다. 남들이 사춘기 때, 스무 살 무렵에 알아낸 것들을 이제 하나둘씩 알아가고 있다. 이러니 철이 늦을 수밖에. 철이 늦게 든 만큼 피부 주름도, 마음의 노화도 늦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