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커피일기

가장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by 아무

‘따다라라란 따라라란~ 네가 없는 거리에는…….’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애태워도 마주친 추억이 반가워…….'


전주와 첫 소절만 들려와도 몽글거리는 노래가 있다. 성시경의 '거리에서'는 내게 그런 노래다. 가사나 멜로디도 좋지만 노래와 함께한 그때 그 시절 나의 이야기들이 함께 섞여 옛 생각에 머무르게 한다. 한참 예뻤던 27살 초겨울 어느 날, 같이 걷던 홍대 뒷골목, 계란 하나를 톡 깨트려 먹었던 상수역 근처 뚝배기 순두부집, 함께 좋아하던 정동길에서 첫눈을 맞았던 설레던 기억들. '거리에서'의 전주라도 듣게 되면 소소한 추억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2001년에 발매했던 데뷔 앨범 <처음처럼>도 소장하고 있고 '내게 오는 길'도 즐겨 들었지만, 노래를 자주 들었을 뿐 가수 성시경을 좋아하진 않았다. 그 시절에는 젝스키스를 좋아했고, UN, 신화도 좋아했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아이돌이 좋았다. 까칠하고 도도해 보이는 발라드 가수에겐 호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TV를 즐겨보지 않는 내게 성시경은 옛날 가수 중 하나였다. 몇 년 전 KBS의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이 개편되면서 성시경이라는 연예인의 존재도 잊혀졌다. 그러다 작년 여름 우연히 유튜브에 빠지게 된 후 '마녀사냥', '비정상회담'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연예인 성시경의 여러 모습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능숙하고 재치 있게 프로그램을 진행을 하는 모습은 나의 고정관념 속 그 사람이 아니었다. 브라운관 속의 이미지가 실제 인물과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만난 유튜브 속 성시경은 한 물 간 옛날 가수가 아니라 매력적인 연예인 그 자체였다.


그러한 인연으로 2019년 겨울, 성시경 <노래> 콘서트에 다녀왔고, 지나간 명곡들을 재발견 중이다. 요즘은 ‘태양계’를 즐겨 듣는다. '태양계'는 2011년에 발매된 7집 <처음>의 수록곡이다. 피아노와 현악기가 전부인 잔잔한 멜로디에 성시경의 목소리가 더해졌을 뿐인데 그 어떤 노래보다 깊이감이 느껴진다. 느린 템포 덕분에 단어 하나하나 귀로 전해져 듣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성시경 - 태양계

나의 사랑이 멀어지네

나의 어제는 사라지네

태양을 따라 도는 저 별들처럼 난

돌고 돌고 돌고

그대를 향한 나의 이 어리석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머물지 못하는 내 두 눈에 고인 눈물이 흐르네

나의 사랑은 떠나갔네

나의 어제는 사라졌네

지구를 따라 도는 저 달 속에 비친

너의 얼굴 얼굴

그 얼굴 위로 흐르던 너의 미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머물지 못하는 내 두 눈에 고인

눈물이 흐르네


감정의 폭풍 한가운데에서 '태양계'를 듣고 있으려니 헤어짐으로 누군가가 그리운 상태가 아닌데도 그리움이 밀려왔다. 음악에 취해서 계속 여기에 머무르고 싶어 무한반복으로 다시 듣기 중이다.


슬프지 않더라도 이별 노래를 들으면 가라앉는다. 슬프지 않더라도 슬픈 노래를 부를 때엔 슬픈 감정을 끌어모아야겠지.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그림 속에 깊은 감정을 담으려면 내가 저 깊은 수렁 속에 빠져야만 했다. 가벼운 가짜 감정을 다루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런 과정이 반복되는 게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자꾸 무너지기 싫어서, 감정의 증폭에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교육이라는 샛길로 도망쳐왔다. 지금도 여전히 그림 그리는 게 즐겁지가 않다. 수업 연구를 할 뿐, 내 작업은 어렵다. 그래서 예술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보이지 않는 감정의 무게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한없이 도도하고 까칠하게 느껴지던 연예인이 아저씨가 되었다. 콘서트 장에서 열광하는 팬들에게 건네는 말 또한 인간적이다. 이제 나이 들어서 더 이상 연애 같은 건 어렵겠다고, 포털 사이트 기사와 댓글에 상처 받았다고, SNS 팔로우 수가 늘었으면 좋겠다며, 요리사 같은 음식 솜씨를 뽐내며 친구와 수다 떨 듯 소소한 일상을 전하는 사람 냄새나는 성시경이 좋아졌다.


오랫동안 좋은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알면 알수록 색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그는 '역시' 연예인이었다. 물론 그중 제일은 노래다. 40대를 홀로 맞이한 보통에서 멀어져 있는 궤도를 지나고 있는 노처녀 사람으로서 연예인 성시경이 오래도록 홀로, 잘 살아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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