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상 읽기

나는 왜 늘 아픈가

휴식이 필요한 시간

by 아무

2주 전,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를 방심하고 민소매와 반바지 잠옷 차림으로 얇은 이불을 덮고 잤더니 바로 감기몸살에 걸렸다. 환절기도 아닌데 으슬으슬한 기운이 2주가 넘도록 계속되었다. 정신 바짝 차리려고 커피로 버티고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몸살 기운이 아니라 내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급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막차를 타고 집에 오자마자 시선이 뿌예지고 몽롱해지면서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버렸나 보다.


‘올 게 왔구나.’


한바탕 일이 몰렸다가 마무리될 때쯤, 이유 없이 쓰러진 적이 몇 번 있다. 이런 일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어떤 순간에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2년 전, 뜨거운 물이 담긴 전기포트를 들고 거실로 이동하다가 그대로 쓰러지면서 두피에 약한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몇 분 정도, 얼마나 쓰러져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외 별 다른 일은 없었고, 같은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진 않는 한 괜찮을 거라는 의사의 처방도 받았지만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다시 그와 비슷한 순간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극한으로 나를 몰아가지 않는다.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만 처리하고 나머진 내려놓아야겠다. 내일은 무조건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




벌써 해가 중천이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계획대로라면 일찍 출근해서 쌓여있는 업무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올 초 계획했던 일들이 코로나로부터 취소되었거나, 그대로 멈춰 잔여물로 남아있다. 진행하기도, 덮어버리기도 곤란한 것들을 이번에 하나씩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여유 있게 아침 겸 점심을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 오늘부터 휴가였지.’


친구들과 대화 모음1.jpg - 우리는 다들 아프다.




학창 시절, 거의 매 학기 과 수석, 학부 수석을 놓치지 않던 동기 한 명은 방학 때가 되면 일주일 정도 병원 신세를 졌다. 에너지 넘치던 학기 때와 달리 병원 침대 위 환자복을 입은 그녀의 야윈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매 학기 입원해야 할 만큼 치료하기 힘든 지병이 있나?’, ‘몸이 많이 허약한가?’ 싶었는데 이젠 알 것 같다. 본인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듯 매 학기 전쟁처럼 최선을 다했을 동기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진 체력에 비해 과하게 업무에 몰입하다가 중심을 잃고 컨디션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지금의 나와 같았다.



아프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나는 왜 아플까’는 내 삶의 가장 큰 화두이다. 어릴 적부터 잔병치례가 많았던 내게 감기는 최대의 적이었다. 어릴 적엔 하룻밤 푹 자고 나면 멀쩡해졌지만, 언젠가부터 일주일 정도 회복기가 필요해졌다. 약기운으로 몽롱하고 눈이 시리고, 목이 까슬까슬해서 잔기침이 나오는 일주일이 너무 힘겨웠다. 덜 아프기 위해 31세가 되던 해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바로 수영을 등록했다. 그 후로 자전거도 타고, 러닝, 필라테스, 순환운동, 클라이밍, 요가 등 여러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열심히 운동한다고 해서 감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과한 운동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들였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적당히' 한다. 운동의 강도도, 나의 행동도, 일도, 관계도 적당히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나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위험한 순간을 마주하기 싫다는 핑계이기도 하다.


‘양생’이란, 질병의 예방과 재활 회춘(회복)을 통해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이다. 곧, 심신을 건강하게 닦아 생활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양생은 한의학 이론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실천적인 내용이다. (...) 양생을 잘 실천하는 사람은 늘 생각을 줄이고 걱정을 줄이고 욕심을 줄이고 일을 줄이고 말을 줄이고 웃음을 줄이고 근심을 줄이고 즐거움을 줄이고 기쁨을 줄이고 노여움을 줄이고 좋아하는 것을 줄이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 열두 가지를 줄이는 것이 양생의 총칙이다. (180쪽, 우아한 건강법, 소동출판사, 2019)


건강과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아프게 하는지 원인을 찾고 싶었다. 건강의 비결은 운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 중요했다. 단순히 근육의 양을 늘리기보다는 질을 높이기 위한 운동이어야 하고, 실외활동을 강조한다. 심신을 건강하게 닦고, 스트레스와 카페인을 줄이고 규칙적인 식사를 해야 한다지만, 그게 말처럼 쉬었으면 아프지도 않았을 거다.

어느 정도 협상 가능한, 규칙적인 식사와 적당한 운동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일이 갑자기 몰릴 때면 그것도 쉽지가 않다. 나의 업무는 한 번 몰리면 왕창, 한가할 때는 거의 없다.



친구들과 대화 모음2.jpg - 우리는 다들 아프다.



일이 쌓일 땐 내가 내 삶의 주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체 그저 앞만 보고 뛰는 경주마처럼 일만 한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목적이나 의미 따윈 기억나지 않는다. 그 상황을 완전히 지나쳐와야만 '내가 또 빠져들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어제의 나는 그때처럼 지쳐있었다. 이리저리 치이는 인간관계도, 버거운 업무도. 나를 시험에 드는 순간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같은 생각으로 울적해져 쉬이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급한 일을 마무리했으니, 이제 아파도 괜찮은 시기가 온 걸까?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마감이 급하지 않으니 쉬어도 되는 걸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고 싶은데 그건 욕심인 걸까?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일단 오늘은 쉬어야겠다. 이 정도의 휴식을 내게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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