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2021-26/에세이]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하현. 비에이블. (2021)
기억은 왜곡된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던 날 스치듯 찾아낸 이 책은 그림인 듯 사진 같은 책 표지, 단번에 기억날 만큼 강렬하진 않지만, 여운이 남는 제목, 평범하지 않은 저자 이름까지. 모든 것이 그날의 기운과 맞아떨어져 다시 떠올리고 싶은 책으로 남았다. 기억을 끄집어내어 다시 만난 이 책,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는 괜찮은 에세이집이다.
좋은 에세이의 기준이 무언지, 에세이 따위를 왜 읽는 건지, 모르는 사람의 일상이 왜 궁금한 건지,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선택한 기준이나 의미를 설명할 수 없어 떳떳하게 취향을 밝히지 못하던 내가 에세이를 썼다. 에세이라기보다는 일기와 닮아있는 글을 쓰고 난 후, 글쓰기의 고단함을 알게 된 후, 에세이는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은 용기와 자신감이 담겨있는 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저자의 섬세한 묘사를 읽으며 ‘그래, 내 생각도 너와 같아.’ 같은 공감을 만들어내며 친밀감을 느끼는 것. ‘나는 당신처럼 멋진 글을 쓸 순 없지만, 너와 같은 생각을 해. 우리는 같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금세 끝이 난다. 이 책을 처음 만나던 날, 그날의 분위기 덕분인지 글이 좋아서인지, 따듯한 여운이 남는 책.
소소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직업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무겁지 않은 가벼운 읽을거리를 원하는 사람에게 하현의 글을 권하고 싶다.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잘 듣기 위해서는 아무 말도 듣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