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을 펼쳐보는 법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입 밖에 오랫동안 꺼내지 않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죽어 버린답니다."
일본 드라마 <귀에 맞으신다면.> 주인공 미소노는 팟캐스트 DJ의 말을 듣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죽어버리기 전에 체인점 음식에 대한 본인의 진심을 팟캐스트로 고백하기에 나섰다. 내게도 좋아하는 마음을 더 적극적으로 글로 옮겨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있다.
지난해 지역 평생학습관에서 듣게 된 온라인 에세이 수업이었다. 강사님은 무려 '씨네21'의 이다혜 기자님!!! 기자님이 직접 첨삭까지 해주시는 6회 차 수업이 겨우 만오천 원! 이렇게 쓰고 나니 속물 같지만 여하튼 내 고장 버프로 기자님의 재능기부 수혜를 입었다.
기자님은 첫 수업 시간에 우리는 좋아하는 것들을 먼저 써보자 이야기했다. 비판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이야기하는 글은 관심받기 쉽지만, 좋아하는 대상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글쓰기는 어렵다 했다. 또 좋아하는 마음을 담은 글은 글쓴이가 신이 나기 마련이고, 그 마음은 독자에게도 전해지는 법이라고. 듣기 싫은 부정적인 뉴스가 가득한 세상에 나 또한 힘든 이야기를 하나 더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실 수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기자님의 저서들에서 똑 부러지는 느낌을 받아 혼자서 지적이고 이성적일 거라 상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따뜻한 글쓰기를 하자고 하니 그 예기지 못한 매력에 치이고 주제 또한 말랑하게 다가왔다. 그렇다. 나는 작은 것에도 감동받는 INFP다.
6회 차의 수업 동안 3편의 짧은 글을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모두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글들이었다. 추억 속 빛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 또는 말들, 마지막은 자유 주제였다. 이 수업도 평일의 오전에 진행되는 수업이라 취준생, 주부, 은퇴자 등 오프라인에서는 한데 모이기 힘든 조합이 뭉쳤다. 다양한 서로의 경험치 덕분에 특색 있는 각자의 글을 만나게 됐다.
동트기 전부터 하루를 시작하며 이른 아침의 고요함을 즐긴다는 부지런한 고백, 번아웃 이후 취준생의 삶으로 돌아왔지만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보다 무기력한 자신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그저 관찰해 보겠다던 솔직한 다짐, 어른들의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는 어린이의 말과 행동을 담은 생생한 기록까지 특별하진 않아도 각자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글 속에 담겨 있었다.
좋아하는 감정들은 휘발성이 크다고 한다. 그 감정들이 날아가 없어지지 않도록 에세이 수업이라는 기회를 빌어 한데 모아보고 다시 엮어도 봤다. n 년 일기장 영업왕인 김신지 작가님은 ‘미래의 나에게 알려주고 싶은 일을 일기에 쓰라’고 했다. 결국 일기를 쓰는 것도 내게 좋은 순간들을 모아두기 위해 쓰는 것이고, 나에게도 이런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그걸 이 에세이 수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는 게 바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삶의 접힌 부분들을 펼쳐보면 다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글쓰기를 하는 건 시간을 내서 접힌 삶의 부분들을 펼쳐보는 거예요.” 마지막 수업 시간, 기자님은 글을 쓰는 건 스스로를 꼼꼼히 사랑하는 법이라 말했다. 그리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지금을 잘 기억하고 싶어서 쓰고, 5년 뒤, 10년 뒤 읽을 나를 위해서도 쓰는 것이고, 그게 글쓰기의 효용이라고.
6주간의 수업이 끝났고, 지인들과 일주일에 한 번 ‘일류여성’이라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게 됐다. ‘이렇게 고민하며 일을 하는(찾는) 여자들도 있어요’를 말하는 체험형 생활 리뷰라고 해야 할까. 일에는 이런 다양한 방식과 사소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는 쇼핑몰 후기 같이 누군가에게는 참고사항이 되길 바라는 뉴스레터다.
무엇보다 지금의 고민과 즐거움들을 잊지 말고 잘 갈무리해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순간임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스스로에게 자학과 냉소를 보내기 일쑤지만, 그래도 글로 적어내다 보면 지금의 시간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잘해보자는 셀프 위로랄까. 미래의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간을 위해 오늘도 일단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