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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Mar 14. 2022

비맞이 봄맞이

봄동도 수선화도 개구리도 벙글벙글  

 



   꺄뚁! 강아지와 아침 산책길에 나선 친구가 비 소식을 전해왔다. 고뢩? 뒤척이던 몸을 벌떡 일으켜 부리나케 블라인드를 올렸다. 안개비인지 보슬비인지 실비인지, 노크 소리도 못 들었는데 테라스에 펼쳐져 있다. 기지개를 켤 새 없이 이불을 걷어내고는 거실의 화분을 바깥으로 들어냈다. 서너 개를 옮기고 나니 나도 모르게 아이코, 허리야! 주말의 휴식에 빠져있던 애들이 거들었다. 목마른 잎사귀의 나날을 얘들도 어지간히 견뎠으리라. 긴 겨울 이후 첫나들이에 나선 화분식물들. 받침대도 빗물 샤워에 빠져들어 통통거린다. 나도 머리카락이 다 젖었다.



천리향이 벙글었어요. 이 향기와 소리,  천리만리 그대에게 가닿기를...


   매화나무 아래에서 키 작은 수선화가 노란 얼굴을 수줍게 내민다. 어제는 한 송이, 오늘은 세 송이. 원두막 곁에선 산수유 꽃잎이 화들짝 피어났다. 텃밭 고랑은 신발이 미끄러질 만큼 젖었다.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지만 이번처럼 애가 탄 겨울나기도 없었을 것이다. 아파트에서의 비요일은 그저 감상용이었다. 가뭄 또는 장마에 애타는 농민들 소식은 일회성 안타까움이었다. 가격 차이만 날 뿐 마트, 시장, 인터넷 어디에서든 필요한 농산물을 맘대로 구할 수 있었으니까. 시골살이는, 편리함과 익숙함에 물들어 지낸 일상에 또 다른 눈길을 얹어주었다.



   이틀에 한 번씩 우편함에 꽂히는 농민신문에서 비 소식을 본 적 있었다. 지난해 11월이 마지막이었다는. 넉 달만에 비가 온 셈이다. 이번 겨울이 추웠던 탓도 있지만 겨울나기 선수인 대파가 일찌감치 텃밭에서 퇴장했다. 시금치도 봄동도 예년과 달리 제대로 자라질 않았다. 마트에서도 사 먹고 시이모님께도 얻어먹었다. 잎이 시들해지면 호스를 끌어내 물을 뿌렸으나 역부족. 한 줌 바람에도 풀풀거리는 텃밭의 흙. 영남알프스 산꼭대기가 매일 전송하는 미세먼지 상태. 물줄기라도 흐르면 다행인 천과 계곡들. 저 알아서 피어나는 이른 봄꽃마저 여느 해와는 달랐다. 수분 부족 상황은 꽃의 색깔도 모양도 신선함도 앗아갔다. 텃밭의 홍매화가 심했다.  이쁜 분홍에 홀딱 반해서 지난봄 두 해 동안 얼마나 사진을 찍어댔던가.

   겨우내 비를 기다린 까닭은 뭣보다도 마음에 든 가뭄 때문이었으리라. 나뿐이었을까. 온 세상이 가물었던 나날. 비가 푹푹 쏟아진다는 것. 오징어 숭숭 썰어 넣은 파전에 더덕 동동주 한 사발 달달하게 들이켜는 일 같은 것. 좋은 사람과의 그러한 순간엔 가뭄 이상의 것들도 잊을 듯한 기분. 그런 맘으로 단비를 기다렸을 테다.



창에 부딪는 빗소리, 넉 달만이다.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대기도 땅도 사람도 제법 젖었다.


   텃밭의 과실나무엔 꽃이 피었을까. 신발과 바짓가랑이에 흙물이 튀어도 젖은 땅이 찰방찰방 경쾌하다. 그간 무심했구나. 백매실나무는 언제 꽃들을 저렇게나 피워냈는지. 살구나무엔 꽃봉오리가 터질 듯 마구마구 벙글었다. 그중 딱 한 송이가 어여삐 피었다. 나의 카메라 세례에 더 이쁜 분홍 얼굴로 변모한다. 자두나무에는 푸른빛 꽃봉오리가 벙근다. 바닥에 바싹 엎드린 냉이들도 제 빛깔을 찾아간다. 화단에는 천리향 꽃이 빗방울을 매달고 천리만리 내달린다. 장수매도 명자나무도 새잎을 한껏 올리고 있다. 텃밭 출입문 곁의 앵두나무는 꽃송이 발사 태세를 완전히 갖췄다. 대문간의 모과나무도 꽃봉오리같이 내민 잎사귀에 겹겹 연둣빛을 매달았다. 물기를 맘껏 머금은 대기가 세상의 싱싱한 기운을 모조리 끌어안았다.  



   오후엔 호스를 끌어내 창문과 창틀을 씻어냈다. 아파트의 창틀과 창문은 바깥에서 닦을 수 없지만 주택에선 물청소가 가능한 게 장점이다. 먼지도 문제이지만 온갖 벌레 사체가 창틀을 차지하므로 청소를 게을리하면 참 곤란해지는 곳. 시골살이 주부의 게으른 성향은 화장실뿐 아니라 창틀에서도 탄로 나니, 에효효. 화분은 내일 해가 나면 들이려 한다. 산뜻해진 몸으로 제자리를 찾아들면 말 못 하는 식물이라도 상쾌하겠지. 경칩 지나고 춘분이 코앞인데 개구리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언 땅을 뚫고 정말 나오긴 한 건지. 저녁밥을 먹고 난 후 개구리 합창을 들었다. 기나긴 겨울을 무사히 건너 해후한 도동마을 개구리들. 오늘 드디어 가족, 연인, 친구, 이웃 모두 모두 모였나 보다. 비요일의 첫 잔치를 벌였겠지. 이제 봄날의 어둔 창을 열면 개구리 노랫가락 북적이는 별들이 매일 떠오르려니.  

            


백매실꽃봉오리도 오늘의 빗방울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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