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자기 작품과 고뇌를 하며 치열하게 작업을 하는 작가님들을 보면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저 나는 예쁜 것이 좋고, 눈에 아름다운 것에만 온 마음을 쏟는 편이었다.
사색에 잠기기보다 좋은 것, 예쁜 것을 내 작업에 하나라도 더 많이 담아내고 싶었다.
어떻게 저렇게 깊이 고민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온전히 작업에 담아낼 수 있을까?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지만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시작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시, 내가 가장 잘 아는 ‘예쁜 것’들의 세계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은 내게 '고뇌'라는 단어의 무게를 조금씩 알려주었다.
어느 날 문득, 꽃잎 하나를 겹쳐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겹은 켜켜이 쌓인 나의 시간이었으면 좋겠어.’ ‘이 색은 보는 사람이 각자의 기억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 막연했던 나의 생각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꽃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30대 초반의 나는 그저 잘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길 바랐고, 잘 만든다는 칭찬이 달콤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시작이 쉬웠던 시절. 하지만 1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이별하고, 삶의 다양한 굴곡을 지나며 나만의 질문들이 생겨났다.
드디어 그 순간이 나에게도 온 것이다.
비로소 내가 동경하던 '작업과 씨름하는 모습'에 어렴풋이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업은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
동경하던 그 환경이 나에게 왔는데, 예전만큼의 기세는 사라졌다. 내 작업이 재미없게 느껴질 때도 많았고, 때로는 가위질조차 버거웠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운 것도 함께 늘어났다. 내 생각이 담기기 시작하자 작업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이게 정말 좋은 일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머뭇거리는 순간이 늘어나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더 잘 참아내고 더 신중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면, 어른이 된다는 건 조금은… 슬픈 일일지도 모르겠다.
모를 때의 무모했던 용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깊은 사색과 무거운 책임감이 채우고 있다. 하지만 이 무거움은 내가 그만큼 세상을, 그리고 이 일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일단 그렇게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