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전공이 아니라서 그랬나?
나는 내가 만든 꽃에 아주 쉽게 빠져든다.
쉽게 사랑하고, 또 쉽게 만족한다.
물론 그것이 내 실력과 정확히 비례한다고 믿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늘 내 작업에 애정을 담아낸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내가 조금 불편해지기도 했었지만, 사실 나는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보여도 나는 비교적 쉽게 눈을 감아준다.
그건 외면이라기보다,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내 작업물은 아무리 다시 들여다봐도 늘 내 눈에는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만족’이라는 감정이 어느 날은 묘하게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디자인을 전공했다. 수많은 공모전과 대회를 휩쓸었고, 누가 봐도 충분히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늘 말한다.
“아직 부족해.”
“이건 좀 부끄러워.”
그 친구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만족하는 걸까. ‘진짜 정답’을 모르는 사람이라서 내 기준이 너무 낮은 건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쉽게 스스로에게 합격을 주는 건 아닐까.
이론도, 공식도 없는 나의 판단은
한동안 나에게 약점처럼 느껴졌다.
어딘가 늘 불안하게 흔들리는 기준처럼.
그렇게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채로 5년쯤 지났을까.어느 날 한 브랜드 클라이언트가 이런 말을 했다.
“작가님 꽃에는 뭔가 다른 결이 있어요. 딱 떨어지는 느낌은 아닌데, 그래서 더 내추럴하고, 러프하고…
뭔가 느낌이 있어요. 의도하신 걸까요?”
의도…?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어쩌면 그동안 마음 한켠에 붙어 있던 ‘나는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니까’라는
자격지심 같은 감정이 그제야 스르르 풀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내 꽃은 나에게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나는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변화에도 크게 반응할 줄 아는 감각을 가진 사람은 아닐까.
꽃잎의 각도를 1도만 비틀었을 때 생기는 미묘한 생동감,종이를 아주 살짝 늘렸을 때 달라지는 표정,
그 사소한 차이를 나는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냥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그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그 자체에 기꺼이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제야 내가 해온 ‘디자인’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됐다. 전공이 아니어도, 이론이 없어도, 나만의 속도의 감성과 나만의 기준이 있는 감각으로 충분히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걸.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것에 너무 차가운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내가 만든 것을 먼저 사랑해 주고, 예쁜 점을 먼저 발견해 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또 나는 나는 쉽게 만족하는 만큼,
누구보다 많이 만든다.
수없이 자르고, 붙이고,
망치고, 다시 만들면서
조용히 쌓아간다.
어쩌면 이렇게 쉽게 만족하는 성향 덕분에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다음 번에는 조금 더 잘 해보고 싶다는 연습의 에너지도 계속 생겨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건 욕심이 아니라, 그냥 ‘진짜 내 것’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일을 하며 삶을 대하는 나의 방식도 달라졌다. 완벽한 완성형의 삶은 없다는 것. 오직 나아지는 과정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일상에서도 아주 작은 변화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려고 한다. 내 꽃에 관대하고, 쉽게 만족하는 것처럼.
새로 배운 영어 문장 한 줄에, 새로 오픈한 카페에서 마시는 라떼 한 잔의 작은 설렘에 어김없이 “아, 좋다”라고 말하는 편이다.
타인이 세운 거창하거나 차가운 기준에 나를 맞추기보다, 내 마음이 반응하는 지점을 동력 삼아 나만의 속도로 걷게 되었다.
결국 나는 전공자가 아니라서 쉽게 만족했던 것이 아니다. 작은 변화에도 매번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이 지치지 않는 기쁨으로 오늘도 종이를 자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내 즐거움에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도 기쁨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려면 더 쉽게 만족하고, 더 자주 웃어야겠다.
오늘 만든 꽃잎은 어제보다 곡선이 낮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늘 조금 다르게 남는다.
반복 속에서 생기는 이 오차가 흥미롭다.
그래서 오늘도 가슴이 뛰었다.
그럼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