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오후 12시 18분, 오후 상담가기 전에 EBS라디오 어플을 열었다.
눈앞에는 노트북이 있고, 옆에는 따뜻한 카페라테가 있다. 케이크를 먹고 싶지만, 참았다.
아침 6시 40분,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안 피곤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잘 듣지 못했다.
"어?"
"안 피곤 하냐고."
"글쎄."
그때는 피곤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온몸에 피곤이 몰려온다. 오후 상담가기 전에 딱 40분이 남아서 수요일 강의 ppt를 손보려고 노트북을 펼친 참이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한 문장이 흘러나온다.
"내가 잃어버린 것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내 방식대로 해석해서 기록했다.
어제 집단상담이 떠올랐다. 남편이 나에게 아침에 그 질문을 한 이유가 있다.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서 서울행 KTX를 타고 2시간 30분가량 달려가서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집단상담에 참여했다. 우리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20분 정도 되었다.
첫 시간은 자기소개와 내가 집단에 참여하는 이유를 나누었다.
나는 그날그날 별명을 다르게 짓는 편이다. 어제는 '윤슬'에 꽂혔다. 차로 30분이면 햇볕이 반짝이는 바다를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왜 그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서 집단에 참여하고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왔다고 했다.
교류분석 집단이었다. 7.5시간 동안 얼마나 이론을 다루고 얼마나 집단의 이야기를 할 것인지 궁금했다. 어제집단원들은 상담사로서 몇 년 동안 활동하신 분들이 많았다. 현장에서 지금 생생하게 일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훅 삶의 이야기로 들어갔다. 한 분은 자기소개에서 나를 언급했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어제 작업 내내 그 분과 스트로크(자극)를 주고받았다.
어제 감정 작업은 오전 세션에 한 명, 오후 세션에 네 명이었다. 나는 감정 작업을 한 건 아니었다. 아직 그 정도가 되지 못한다. 나의 이슈 중 '하나는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도 있기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감정에 그렇게 깊이 접촉할 수 있을까는 아마도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
줌 집단과 대면 집단을 또 달랐다. 역시나 대면집단이 역동이 좋다. 얼굴 보면서 이야기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더 편안하게 꺼내놓을 수 있다. 줌 집단에서는 몇 단계를 거쳐야 상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일단, 집단에서 말을 하려고 마음먹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는지 지켜봐야 하고 그 마음 마이크를 켜야 한다. 줌 집단은 상호작용하기에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다. 대면집단은 그 단계가 적다. 마음먹고 주변 사람들 얼굴을 살피고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좋다.
예전 집단에서 나는 말 많은 집단원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차서 꺼내놓느라 정신없었다. 내가 말이 많다는 걸 알아차린 후, 말을 참느라 노력했다. 말을 꿀꺽 삼키려고 하니 체할 것 같았다. 꾹꾹 억누르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다. 어제를 떠올려보니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했던 거 같다. 내가 집단상담을 좋아하는 이유는 안전하게 인간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시간이 어서였다.
내 옆에 집단원 덕분에,
그 새벽에 일어나서 집단상담에 참여하고 내려온 이유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다음 주 서울을 한 번 더 가야 하지만,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기대가 된다.
주말 동안 편안함과 휴식은 잃었지만,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이해'를 한 스푼 더 얻고 왔다.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뭔가를 열심히 하는지
나에 대한 '이해'는 두 스푼 더 얻고 왔다.
내 딸들에게 어깨를 펴고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걸 확인시켜 준
집단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인간은 무엇에게서든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 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신형철)-
*지난 십수 년 동안 잃어버린 것
'타인에 대한 기대'였다.
그 기대가 비현실적인 것이고
비합리적인 것이라는 걸 알게 된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의 평온함을 잃고
매순간 흔들리며 살아가는 덕분에
처절하게 배우는 중이다.
삶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