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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습작노트

화나는 순간, 내가 보인다

마음 들여다보기

by 스타티스

'타인의 어떤 모습을 보고 화가 난다면, 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담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여러 가지 중 하나이다. 나의 그림자 영역 중 일부 일 수 있다.

오늘 두 가지 상황에서 가 났다.


첫 번째, 상담장면이었다.

내담자는 남에게 피해 주는 게 싫다고 했다. 그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다음 문장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남들이 나에게 피해 주는 건 괜찮아요."


'응?' 그것 공평하지 않잖아. 내담자는 너무 힘들어서 운 적이 있다고 했다. 내 숙제는 대충 하는데 조별과제는 책임지고 끝낸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데 가슴속 심장 부위에서 꿈틀 반응했다.


그건 내 모습이 아니었던가. 순간 구분해야 했다. '상담자로서 나', '일상을 살아가는 나'를 말이다.


상담에서 내담자의 말을 따라가다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체크하고 그 간극을 내담자가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슈퍼바이저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상담자 역전이를 조심해야 했다. 내 감정인건지, 내담자의 감정을 따라가다가 느낀 것인지 구분해야 했다.


일단 내담자의 말에서 뭔가 건드려진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사사로운 감정이 상담에 투영되지 않게 조심했다. 그리고 상담을 마무리 짓고 나와서 생각해 봤다.


그랬다.

화가 난 두 번째 이유는 내 마음이었다.

사실 나도 내담자처럼 살고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담실에 출근하면 공통으로 해야 하는 일에는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러다 내 개인상담 보고서 쓰는 걸 놓쳐서 다른 날 또 와서 입력하는 날도 있었다. 어떤 분은 딱 자기 일만 한다. 먼저 끼어들지도 않는다. 상황이 종료되면 말한다. '선생님, 그 일 하느라 수고하셨어요.'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우리 중 누군가가 고생할 거 같으면 내가 맡아서 하는 편이었다. 예전에는 티도 내지 않고 힘들어도 꾹 참으면서 묵묵히 버텼다. 그러니 우울이 왔지.


오늘 내담자도 그랬다. 그러니 내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월 집단상담에 참여하며 한 가지 배우고 온 게 있다. 불편한 부분도 이야기할 용기가 있어야 했다. 오히려 관계가 단절보다 연결로 이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불편한 부분을 꾹 참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오히려 인연의 끈을 놓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 순간 느끼는 걸 나눌 수 있어야 '친밀'한 관계로 갈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있는 그대로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근무자 중 한 분께는 솔직하게 말한다. "선생님 그래서 제가 불편했어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두 명에게는 말하지 못한다. 그분들은 이야기하면 상처받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편하다. 고민하게 된다. 개인의 성향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마음의 단단함도 다르다. 어쩌면 그분이 2차 성장 시기라서 연약함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말하기 조심스럽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갑자기 받아들이는 걸 힘들어한다. 그런데 근무자 중 한 분은 돌발상황을 많이 만든다.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닌 거 같다. 학생 내담자들을 위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자인 우리도 돌보면서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는 시간 없이 3시간 연속으로 내 상담을 잡아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 본인의 스케줄표를 보니 3시간 연속 상담은 아니었다. '그럼 나는 뭐지?' 싶었다.


오늘 다른 선생님이 그런다. "선생님은 그거 다 할 수 있잖아."

그랬다. 사실 나는 마음먹으면 다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분들은 접수면접을 하루에 하나 진행하고 보고서 작성하는 걸 힘들어하는데, 나는 개인상담 오전에 진행하면서 오후에 접수면접 두 개 진행하고 보고서까지 다 쓴 적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내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하지만 나도 힘들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내가 어떤지 모른다.


오늘 만난 내담자도 그랬다. 그렇게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혼자 힘들어서 울었다고 했다. 그 말에 울컥했던 이유가 내 모습이 있어서였다. 이제 나는 힘들다고 말하려고 한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 서툴 수밖에 없다. 내가 힘들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일단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상처받지 않을)안전한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했다. "선생님, 제가 심리검사 결과 3개 입력할 거니까, 선생님도 3개 해주세요." 그 선생님이 그랬다. "내가 지금 접수면접 하고 있는 게 있어서 그거 입력 다하고 할게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나는 내 거를 미뤄두고 다른 사람 걸 먼저 처리하고 있었구나.'

내 개인상담 보고서는 작성을 미뤄두고 다른 사람 들걸 해주고 있었다. 그랬다.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 선생님도 내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했는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니, 본인 일도 시간 안에 못 마치실 거 같았다.


"선생님, 일단 접수면접 보고서 먼저 쓰시고 저한테 이야기하셔요."

그리고 열심히 입력했다. 그분보다 빨리 끝내고, 해석상담사 배정을 마치고 그분들께 연락까지 했다. 하지만 여유시간에 준비하려고 할 수요일 오후 수업준비를 못했다.


하. 이렇게 또 불편감이 남는구나.


'나는 왜 이렇게 도와주려고 하는 걸까. 내 일을 제쳐두고 말이다. 나는 무리해도 된다는 말일까? 왜 그 선생님처럼 내 거 다하고 해 줄게요. 이 말을 못 하는 걸까.'


내담자와 만남은 숙제를 남긴다.

내 모습 중 일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못하면서 내담자에게 하라고 한다면 그건 마음이 너무나도 불편한 일이다.

오늘 내담자분에게 숙제를 내줬다. 무리하게 하지 말고 거절하라고 말이다.

사실 그건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다음번에는 꾹 참고 견뎌보자.

먼저 한다고 하지 말자.

내 거부터 먼저 처리해 보자.

공동을 위한 일 말고.


친해지면 왠지 해줘야 할거 같아.

그래서 친해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이유 중 하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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