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진정시키는 힘

필요한 대상의 역할 부재 :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

by 스타티스

Pixabay로부터 입수된 olga volkovitskaia님의 이미지입니다.



어제와 오늘의 핵심단어는 '진정'과 '위로'였다.


그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사례 속 내담자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말 아침 교육분석 시간에 선생님이 그러셨다.

"왜 우리는 이렇게 아파야만 깨닫고 변할 수 있는 걸까."


나의 힘든 순간을 함께 들여다보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난 교육분석 선생님들도, 8년째 만나고 있는 언니들도 내 마음속에 있던 자기 대상*이었다.


*자기 대상 :

자기의 한 부분으로 경험되거나 자기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로 사용되는 대상.

아이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충족시켜 주는 양육.

아이가 나중에 성숙했을 때 자신의 정신구조(성숙한 자기)가 담당해야 하는 기능을 지금 대신 제공해 주는 대상.


자기 대상이 약한 사람은 누군가 나를 존중해 주고 나를 바라봐주는 경험이 필요했다.

오늘 사례자는 엄마에게 맞추는 형태로 살아왔기에 자기 감이 단단한 형태로 자라지 못했다. 과거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자극추구가 높고, 위험회피도 높다. 청소년기에 불안했었다.


그 당시에

'너 잘하고 있어.'라는, 불안감 줄여주는 자기 대상이 간절히 필요했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남들보다 더 잘할 때 하고 싶어 한다.

좋은 부모는 "왜 너는 이 걸 하고 싶니?" "이걸 할 때 어때?"라고 계속 아이 마음을 물어봐주어야 한다. 어떤 때는 확신이 필요하기도 하다. 진로에 관련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랬었다.

우리 부모님이 그런 말을 해준 적 있었을까?


진로 부분에서는 남편이 나에게 물었었다. "너 진짜 이거하고 싶은 거 맞아?"라고.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은 남편의 지지를 얻고 있는 듯하다. 공부를 선택할 때, 남편으로부터 확신을 얻었고, 지지를 해주었다. 방송대 오티 때도 남편이 데려다주어서 참석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운전을 못했는데, 이후 남편이 운전도 하게끔 해서(중간과정이야 어쨌든) 지금은 공부도, 일도 자유롭게 하려 다닌다.


우리한테는 내 마음을 확인해 줄 자기 대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분야별로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면서 하게 되었다. 내 마음이 힘들 때는 상담선생님들을 찾아가고, 일상을 나눌 때는 언니들을 찾고, 진로 관련해서는 남편에게 이야기했었었나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땠을까?

기댈 곳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아버지가 지원해 주셨지만, 먹고, 자고, 빨래 등 물리적 환경 부분은 엄마가 지원해 주셨다. 삼시 세 끼를 챙겨주셨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지원받지 못했었다.


그 어떤 부모도 완벽한 부모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부모이다.

하지만 난 기질적으로 그런 부분의 지원이 간절히 필요했던 아이였다.


어린 시절 두려움이 많았던 나에게 '실패해도 괜찮아. 한 번 해봐.'라고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꿈을 꾸면 그렇게 전쟁터에 동생들과 있는 느낌이었었나 보다.

부모님은 존재하는데 마음속에 자기 대상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 공부한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부모님 관련 이슈 : 이상화 자기-대상 역할 결여

(강하면서도 나를 진정시켜 줄 대상과 융합하고자 하는 욕구를 수용해 주는 이상화 자기 대상의 역할 필요)

내가 성공하고 내가 나를 챙길 수 있는 형태로 자기 자신의 이상화된 자기-대상을 시도하고자 함


대상관계이론을 기반으로 해서 사례를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요즘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다른 사례를 보면서도 내 작업을 하니까 피곤이 빨리 밀려온다. 특히 오늘은 법적으로 처리할 일도 있었고, 내담자를 만나 상담도 하고, 복잡한 관계인 지인과 통화도 했다. 저녁까지 수업을 들으며 마음 작업을 하니 무겁다.


이렇게 알아차리고 있는 나를 만나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이런 말도 올라온다. '너 오늘 피곤할만해. 많은 일을 했구나. 수고했다.'


상담을 하면서

내 안의 나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