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상황
2023.6.1 목
목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는 상담수련시간이다. 조별로 상담자-내담자 역할을 바꿔가면서 실습을 하고 동료 슈퍼비전도 진행된다. 오늘은 내가 내담자 역할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 고민이 뭐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당장 내일 발표를 해야 한다.
다음 주 목요일에는 공개사례발표가 있다. 7월에는 학회에서 포스터발표도 확정이 되었다.
내일 발표는 수련 중인 센터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나머지 두 개는 내가 신청해서 하게 되었다. 나는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전문성'을 갖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빨리 성장하고 싶었다. 이젠 알게 되었다. 성장할 수 있지만 '빨리'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어쨌든 그 목적지까지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그리 빨리 가고 싶었나?
오늘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집단상담에 참여했다. 총 5회기 교류분석 집단상담으로 코리더역할을 하고 있다. 집단원들을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오늘 참여자 중 한 분의 고민이 내 모습과 맞닿아 있었다. 나도 빨리 증명하고 싶었다. 남편에게 부모님에게 빨리 전문가로 자리 잡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한편으로 그 마음을 알아주었다. '내가 빨리 성장하고 싶었구나.' 알아주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다음 고민이 올라왔다. '내일 발표 어떡하지????'
이미 보고서를 제출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발표날이 되어서 참석해서 보고서를 읽으면 된다. 그런데 뭐가 그리 고민이 되는 거였을까?
머릿속으로 두 장면이 지나갔다.
첫 번째, 첫 공개사례발표회 날이다. 첫 개인상담인데 공개사례 발표를 하게 되었다. 석사졸업 요건이었기 때문이다. 상담이 뭔지도 모르고 공부하는 입장에서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zoom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수치심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런 장면이 오면 말이 잘 들리지 않고 몸이 얼어붙는다. 그때 장면과 내 얼어있는 내 모습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두 번째, 논문 두 번째 심사일이었다. 동기들과 심사장에서 다 같이 심사 받는 도중에 한 교수님께 불려 가서 큰 소리로 혼났다. 이것밖에 못하냐고 그러셨던 걸로 기억이 난다. 교수님은 머쓱하셨는지, 나 이후 동기들에게는 친절한 모드로 대하셨다. 첫번째 희생양이었다.
당시 나는 새벽 4시 30분경 일어나서 논문을 1시간 30분~2시간가량 쓰고 새벽 출근을 했다. 마감인 프로젝트로 야근하고 정신이 없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서 마음도 힘들고 물리적 시간도 없었다. 내 상황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한 상황에서 애써서 한 결과물이었다.
내 상황을 아는 지도교수님께서 지원을 해주셨다. 어찌어찌 졸업은 했다. 석사 논문이 부끄러워서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다. 결국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다. 수치심이었다. 졸업 후 글모사에서 책도 냈는데, 이 또한 큰 수치심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내 내면의 이야기들을 세상에 꺼내놓는 것도 힘들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종이책으로 읽게 된다는 것이. 또한,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해서 출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또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책을 내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책을 내는 게 목적이었다면 냈으면 되었다고 표면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나도 계약금을 받고 출판사와 정식으로 작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컸었나 보다. 아직은 그런 그릇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또한 엄격한 기준의 덫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 아닌 게 맞긴 하다. 어쨌든 저쨌든 책은 나왔고, 결과물이 나오면서 책을 내고 싶은 욕구는 어느 정도 해소 되었다. 하지만 2011년부터 간간히 뭔가 준비했던 것이라고 하기에는 미미했다.
여러 가지 과거 기억들이 '글로 표현한 나' = '수치심'과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특히 논문 심사 상황이 그랬다. 아직도 생생하다. 오늘 내담자 역할을 하면서 그 장면을 다시 경험하고 왔다.상담 시연장면을 보신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이건 트라우마 상황이 맞습니다."라고 말이다.
내일 상담사례 발표도 벌써 긴장이 된다. 내가 긴장해서 다른 사람들 말이 잘 들리지 않을까 봐 염려가 되고, 누군가 질문했을 때 어버버거릴까 봐 걱정이 된다. 가장 걱정인 것은 내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 봐이다. 논문계획서 발표할 때도 얼어붙어서 아무 대답도 못했던 거 같다. 그때도 지도교수님께서 지원해 주셨다. (우리 지도교수님을 부모님처럼 느끼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에서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하지만, 박사진학을 우리연구실 안에서 못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트라우마 상황과 연결되었다. 논문심사 때 또 그때 그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겪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적고 보니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바보처럼 보일까 봐 염려가 되는가 보다.
그러면 어때서?
음, 나는 똑 부러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 항상 그래야 하나?
아니다.
- 바보처럼 보이면 뭐 어때.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다.
- 잘 못하면 어때.
- 그래, 그러면 어때.
- 하기만 하면 되지 뭐.
내일 발표도, 다음 주 공개사례발표도, 다음 달 포스터발표도
하기면 하면 된다. 그렇다. 하고만 오자.
*오늘 집단상담 참여
수련시간 내담자 경험,
덕분에 내 안에 자리잡은 수치심과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시간들이 나에게 주어진 것에 큰 감사함을 느낀다.
상담공부를 할 수 있어서,
내 안의 나를 만날 수 있어서,
나를 내가 돌봐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