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나에게 쓰는 편지
2020. 11.
해야 하는 일을 못했을 때
상담 예약이 있었다. 시간이 되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오늘 중 그 시간은 그 역할을 위해서 비워둔 시간이었다. 40분을 위해서 2시간 정도 준비했다. 지난주는 몇 개 상담이 이어져있어서 준비하자마자 상담 들어가고, 정신이 없었지만, 몸은 뿌듯했다. 뭔가 해낸 날이었다.
내일은 상담 예약이 꽉 차있었다. 오늘은 함께 하는 선생님과 의논해서 정했는데, 내 상담은 No show였다. 같이 하는 선생님은 그때 기분이 은근히 좋다고 했다. 나는 달랐다. 왜 그럴까.
인정에 대하여
뭔가 해내는 '나'만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있는 그대로 '나'였는데, 내가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그 순간에는 몰랐다. 뭔가 스트레스 상황이 있는데 마음이 불편하다 싶고 피하려고 했다. 첫 직장에서 그랬을 때는 밤마다 인터넷 고스톱을 쳤었던 기억이 난다. 나를 믿지 못할 때는 타로를 보러 가거나 사주를 열심히 보러 다니기도 했다. 내 감정을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 밖에서 찾으려고 했었다. 그랬던 기억과 인정욕구가 이어져있는지 몰랐다. 그랬었다.
성취하는 내 모습을 만나지 못하면 불편했었다. 내가 나로 살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끊임없이 뭔가를 해내려고 하고, 내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아등바등 애쎴던 것은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사실 '못하는 나'를 만들어 놓고 뭔가 해내지 못하면 그 안에 나를 몰아넣고, 인정하지 않았다.
2023. 8.
브런치 서랍 속에 넣어둔 글을 꺼내보았다.
해야 하는 일을 못했을 때
어제 상담 일정이다. 개인상담 3건이 있었고, 단체 심리검사가 예약되어 있었다. 지금 수련을 다니는 학생상담센터에서는 매달 날 다음 달 단체 심리검사 일정이 나온다. 수련생들이 돌아가면서 집단심리검사를 진행한다. 내가 이번 달에 맡은 건 홀랜드 직업적성 검사였다. 미리 검사지를 챙겨놓고, 단체 해석상담을 위한 ppt내용도 숙지했다.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대강의 대본을 준비해야 할까 고민했다. 출근해서 신청 학생들 명단을 확인하는데, ‘이럴 수가 아무도 신청 안 했다!’ 속으로 ‘야호’ 감탄사가 나왔다. 20년도 다른 학생상담센터에서 수련할 때는 상담이 완전 처음이었다. 심리검사 해석상담을 기껏 준비했는데 노쇼를 하면 그렇게 화가 났더랬다. 지금은? 내담자가 오면 좋고, 안 와도 좋다.
어제 옆자리 선생님이 내담자가 늦게 오거나 오지 않으면 살짝 화가 난다고 했다. 그 선생님은 수련이 올해가 처음이다.
“선생님 내년 이맘때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아요.”
“왜? 지금은 이야기 못해요?”
“지금 설명해도 선생님께 안 와닿을 수도 있어요.”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대화를 끝냈다.
2020년도의 나를 떠올려본다. 지금은 2023년이다. 중간에 상담을 하지 않은 기간이 있다. 22년도 여름에 석사를 졸업하면서 나는 상담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졸업 후 인연이 있는 언니 출판사에 소속되어 마을공동체 인터뷰, 편집일을 잠시 했었다. 22년도에는 석사논문을 쓰고, 대학 행정실에서 일하는 등 다른 일을 했었더랬다. 23년 1월 다시 상담 현장으로 돌아왔다.
서랍 속에 넣어둔 글에서 20년도의 내가 질문한 내용이 보인다. 그땐 왜 내담자의 NO show에 기분이 좋지 않았을까. 왜 그랬을까.
23년도 내가 답한다.
‘20년도 나에게.‘
‘그때 참 애쓰며 살고 있었구나. 전문영역에서 초심자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었구나. 40분 상담에 2시간을 준비하니까 내담자가 오지 않으면 마음이 힘들었구나.
지금 나는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있어. 어제 옆 선생님이 내담자가 10분 늦으니까 화난다고 했어. 선생님은 화가 안냐 나고 물어보는데 이렇게 대답했어.
“그럴 수도 있겠죠. “
지금은 내담자들이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다고 받아들이고 있어.
어제는 2시 내담자가 10분 늦은 덕분에 아침 회의록도 작성하고 근무일지도 체크했어. 10분을 할 일을 챙기는 시간으로 선택할 수 있는 거라 느끼고 있어.
이렇게 적고 다니 이 문장이 떠오르네.
“이렇게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인정에 대하여
20년도 나에게
학회 포스터 전시를 마치고 나서 석사과정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보냈어. 교수님께서 답장으로 질문을 담은 문장을 보내오셨어.
“이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이 질문을 받으니까 과거 나를 인정하지 못했던 내가 확 떠올랐어. 석사 논문도 그랬었는데. 부끄러웠어.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내가 만들어낸 모든 것들을 인정할 수가 없었어. 논문도 그랬고, 출판한 책도 그랬어.
그때는 이유를 몰랐었어. 이제는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였다는 걸 알게 되었지.
이제는 나에게 이런 말들을 자주 하곤 해.
“그래도 괜찮아. 뭐 어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20년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 말들을 자주 하곤 했는데, 정작 나에게는 해주지 못했었더랬지.
오늘 강의를 갔는데 수강생이 내 질문에 이렇게 답하더라고.
“조금 더 돈을 벌 걸, 조금 더 좋은 데 갈걸.”
그분은 방학 동안 물류센터에서 하루 16만 원 일당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하셨대. 그런데 스스로에게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고 했어.
상담이 아니라서 더 깊이 들어갈 수 없었어.
그래서 “열심히 애쓴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계시네요.”라고 말을 건네고 왔네.
사실 과거 나에게 하는 말이었어. 서랍 속 글들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더라고.
나는 참 나를 부끄러워하며 살았나 봐. 그 시간들이 아쉽네. 나 참 열심히 살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좀 더 잘 선택했었어야 했는데."
"조금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이런 말들 속에 나를 가두고 살았었더라.
힘들었겠다. '20~22년도 과거의 나'
이제는 내면에 나를 탓하는 소리가 작아진 거 같아. 잘 들리지 않아.
그 과정에서 교육분석도 받았고, 내가 상담도 했고, 수많은 집단상담을 거치기도 했다. 많고 많은 상담심리전문교육을 받기도 했고, 심리검사 수업도 듣고 내가 진행하기도 하고 해석상담을 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던 거 같아.
그 시간들을 거치면서 나를 향한 자책이 자리한 구역들에,
나를 돌보는 목소리들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나 봐.
이제는 뭔가 불편하면 스스로에게 물어.
'너 지금 뭐가 불편하지?'
'몸의 어디에서 불편감을 느껴?'
'그 불편감이 들 때 네 기분은 어때?'
'그 감정을 충분히 만나볼까?'
'지금 네 마음은 어떠니?;
내가 나와 대화하는 시간들이 늘어가고 있어.
예전에는 밖으로 향한 시선들이 이제는 내 안으로 데리고 와서,
나를 잘 데리고 사는 연습을 하고 있네.
20년도의 나에게 칭찬하고 싶은 말은
그때 이 글을 잘 남겨두었다는 거야.
23년도의 내가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도 열심히 잘 살았다.
앞으로도 서랍 속 글들을 자주 적어두어야겠다.
미래의 나에게 남겨두는 편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