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과 만나는 순간
2024.1.5 금
"외롭지 않나요?"
이 질문을 듣기 전까지 나는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알게 되었다.
수업 중 다수를 향한 질문이기도 했고, 교육분석 중에 나온 질문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니요"라고 답했다. 난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결혼 전까지 친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냈고, 결혼 후에는 시댁식구들과 다 함께 살기도 했으며, 현재는 두 아이와 남편과 살아가고 있다. 환경적 조건을 봤을 때 외로울 틈이 없다고 생각했다.
수요일 오후 교육분석을 다녀온 이후에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교수님이 질문했을 때는 내적 대상에 대한 상실감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일 거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도착해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이 눈물은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고자 했을까.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보고 있다. 어린 시절 열병으로 청각을 상실한 화가 차진우(정우성)와 승무원을 하다가 배우 길을 선택한 정모은(신현빈)이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차진우와 정모은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다른 마음이진 않았다. 첫사랑에 깊은 상처가 있는 진우는 모은의 마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황이 상대에게 짐이 된다는 걸 너무나도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은은 그에게 더 다가갔다. 수화를 배워서 그의 언어로 소통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둘은 사랑을 시작했다.
영원히 떠난 줄 알았던 진우의 첫사랑이 프랑스에서 돌아왔다. 7년 만이라고 했다. 그는 깊이 아파하고 그녀를 떠나보냈다. 첫사랑은 돌아와서 그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진우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그를 느낀 첫사랑이 말한다.
"어쩌면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과거의 너에게"
라는 단어를 쓴다.
나의 눈물샘이 터진 이유는 여기서였다. 과거의 '나'도 현재에 없고, 과거 나에게 그렇게 친밀함을 표현했던 대상도 현재엔 없다. 이 중요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상대에게 기대했던 것이다. 과거에 너처럼 나에게 친밀하게 대해주길 말이다. 이 세상에 그때의 '그'는 없다. 내적 상실은 슬픔과 마주하게 한다. 지금의 '그'와 과거의 '그'가 다르다는 걸 철저하게 인정해야 했다. 과거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함이다.
마흔이 넘어서야 슬픔을 제대로 만나고 있다. 그전까지는 슬픔의 의미를 모르고 살았다. 하긴 제대로 이별을 해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는데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처럼 또 눈물이 흘렀다. 이 눈물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내적 대상에 대한 상실을 충분히 경험한 후 만난 외로움이었다. 나는 외로운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계속 외로웠는데 그 감정을 만나려 하지 않고 있었던 거였다.
'감정을 억압한다는 것이 이런 의미구나!'
너무나도 컸기에, 그 감정을 제대로 만나면 압도당할 거 같으니 눌러두고 살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애 첫 기억도 혼자였다. 둘째가 입원해서 엄마는 셋째를 업고 병원에 갔다. 다섯 살 나를 집에 혼자 두고 말이다. 창 밖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시작이었구나!'
한 집에 여섯 명이 같이 살고 심지어 학창 시절 한 방에 두 동생들과 같이 살기도 했다. 그래도 항상 혼자라고 느꼈다. 누군가와 친밀해지기 힘들어했다. 가족 내에서도 그랬다.
2022년 이후로 한 해 시작할 때 키워드를 하나 정한다. 한 해 동안 그것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2022년은 '즐거움'이었고,
2023년은 '친밀감'이었다.
2024년 올해는 '자기관찰'이 될 것 같다.
나에 대해서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올해는 억압된 나의 감정들과 만나는 순간을 관찰할 예정이다.
2023년에 슬픔, 2024년 1월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만나고 있다.
'그 동안 나 참 외로워했었구나!'
이제 알아차렸으니,
스스로에게 충분히 토닥여주려고 한다.
#자기관찰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