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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Jun 25. 2024

Sadness

실컷 쓴 글을 날린 날

2024.6.25 화


오늘은 총 4건의 상담이 있다. 두 번째 상담과 세 번째 사이에 30분 쉬는 시간이 있다. 가방에 키보드를 챙겨갔다. '해가 있을 때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주말에 찍은 사진과 내 감성, 그때 느낌, 생각 등등을 적당히 버무려서 제한 시간 안에 집중해서 썼다. 속으로 '와, 진짜 내 마음을 담았다!' 싶었는데, 올리기 누르는 순간 느낌이 싸했다. 그랬다. 글이 날아갔다.


나머지 상담도 잘 진행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가 요청한 저녁메뉴도 잘 차리고, 설거지도 끝내고, 분리수거도 하고 왔다. 그런데 기분은 더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는 것이 아닌가.


무선이어폰으로 몇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에피톤프로젝트의 '선인장',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등등. 지금 왜 이럴까 곰곰이 생각했다. 밤에 써야 할 사례보고서 때문일까, 아니면 이번 주 빡빡한 일정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낮에 날려버린 글 때문이었다. 다시 쓰라고 해도 못 쓸 거 같아서. 공들여 쓴 글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슬프다. 주말의 기억이 담긴 글을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이 없었다면 다시 썼을 텐데, 상담이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글을 날린 건 오후 4시, 내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은 건 9시다. 다섯 시간 동안 그 상실을 경험했다.


상실의 뜻은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이라는 뜻이다. 또 하나의 뜻이 더 있다.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이다. 어떤 대상이 소중해지면 두려워진다. 잃어버리게 될까 봐 불안하게 된다. 오늘 나에게는 낮에 쓴 글이 그 대상이었다. 마음을 담았기에 소중했다. 이 상실의 후유증이 크다. 소중한 사람의 상실은 더 크겠지.


오늘 해 질 녘 풍경과 오늘 도착한 장미


어린 왕자는 석양을 즐겨 본다고 했다.  우울하거나, 쓸쓸하거나, 어쨌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석양을 본다고 한다. 어린 왕자의 별은 하도 작아서 그저 의자 방향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석양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는데, 어린 왕자는 "언젠가는 하루에 석양을 44번이나 본 적이 있다"고도 말했다.


오늘은 어린 왕자처럼 석양을 마흔네 번쯤 보고 싶은 날이다.


한 번 밖에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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