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티스 Jul 20. 2024

소진 그리고 휴식

한 달 동안 글을 쓰지 않으면서...

2024.7.20 토


 마지막으로 글 쓴 날이 6월 25일이다.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때즈음 나의 첫 번째 교육분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00 씨를 조금 아는데, 지금 소진되어 보이는데?"


그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슈퍼바이지 3명이서 참여하는 그룹 슈퍼비전에서 상담자의 역할, 마음에 대해서 직선으로 말씀해 주셨다. 둘러둘러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이후 또 상담센터 집중슈퍼비전에서 선생님을 또 만났다. 만나자마자 따뜻한 손으로 꼭 잡아주시는 선생님. "이번주 시간되면 내 상담실에 꼭 와요. 이야기 좀 해." 결국 못 갔다. 8월에 찾아뵙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이러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몇몇 있다. 지금 내가 지상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다.


돌이켜보면 지하 30층에서 50층즈음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소진이고 뭐고 핑계를 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지하에는 햇빛이 없다. 초록인간인 나는 햇빛이 있는 곳에서 광합성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지난 40년+@ 세월 동안 알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존재였다. 발끝에서 안정감을 찾고 싶어서 발버둥을 쳤다. 그 세월들이 지나갔다. 시간은 흐르고 지나간다. 그 시간들도 나를 관통해서 지나갔다. 이제야 비로소 체감하고 있나 보다. 내가 지쳤다는 걸 느꼈다. 그것도 많이.


왜 그렇게 나를 괴롭히며 살았을까.

해야 하는 일들을 많이 쌓아두었다. 테트리스 하듯이 생활 속 작은 시간들도 해내야 하는 일들을 채워놓았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과 만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해냈다는 약간의 뿌듯함, 성취감이 내 생활을 전반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착각할 수 있다. 실패는 괴로우니 어떻게든 성취하려고 또 애썼더랬다. 그러니 내 마음과는 더 거리 두기를 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 마음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마감에 쫓기지 않고 10시에 마음 편하게 잔다. 새벽에 자다가 깨더라도(거의 매일 그렇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벽에 해야 할 일을 정해두지 않았으니까 여유롭다. 또 잠들면 되고, 몸이 편안할 때 일어나면 된다. 출근시간에 조금 늦더라도, 비 오는 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다. 나에게 현재 소중한 가치는 아이들이니 말이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상담을 하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주 2일는 센터로 내담자들이 찾아오고, 주 3일은 학교로 내담자들을 찾아간다. 주 2회 PT를 하고 있다. 내 몸 구석구석 감각과 만나는 중이다. 등 쪽 근육들과 소통이 없었다. 몸의 어느 쪽이 틀어져있고, 어느 쪽 근육이 짧은지 타이트한지 알아차리고 있다. PT의 목적은 내 몸과 실질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잘 데리고 살아가기 위함이다. 또 주말에 영화를 보고 싶으면 보고, 둘째와 도서관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다가 오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월요일에 급하게 예약해서 목, 금, 토, 일 싱가포르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로 인해 학습지원단 협의회에 빠지기도 했다. 이렇게 떠올려보니,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을까.


밤에 잠이 오고, 잘 자고(깨긴 하지만) 아침에 잘 일어난다. 아침에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내 행동을 관찰해 보니, '현재 나 참 잘 살고 있구나!' 싶다.


 예전엔 잘자지 못했었고, 아침에 일어나긴 하지만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으며, 항상 주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했었더랬다.


지금 참 좋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은 마음이 또 한편에 있다.


현재는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지 않고, 글은 한 톨도 쓰지 않았으며,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도 제쳐두고 있다.


내 몸이 바라는 건 지금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리가 바라는 건 따로 있는 거 같다.


한동안은 이 부분을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





*박사과정 교수님과 컨택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아직도 박사과정에 언제 진학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답을 얻지 못했다. 당시에는 다음 학기 바로 입학하고 싶었다. 교수님께서는 소논문을 하나 쓰고 진행하자고 하셨다. 논문의 유형이 자문화기술지이다 보니, 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차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지금처럼 나를 만나가고 있는 거 같다. 물론 심학원 과정도 중요한 역할을 했더랬지.


*심학원 과정이 끝나가고 있다. 지난 1년 6개월 또 크고 작은 경험들을 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변화도 있었다. 이번 주말에는 그 시간에 대한 정리를 해야지.


*이 글을 지난 한 달 동안 글을 쓰지 않으면서 느꼈던 내 마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글을 쓰지 않으면, 깊어지고 풍부해지긴 어렵다.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Fabien님의 이미지 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