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Really?”

필리핀 세부, 일대일 영어 수업 중 선생님과 나눈 대화

by 스타티스

2025.1.27 월


수업 시간표가 또 바뀌었다. 원장 선생님께서 새로 바뀐 선생님과의 계약이 끝났다고 하셔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화장실에서 선생님을 마주쳤다. “계약이 끝났다고 들었는데요?”라고 묻자, 선생님은 “아닌데요?”라고 대답했다. “수업 시간표가 바뀌었어요!”라고 하니, 괜찮다고만 답하셨다. 선생님과 심리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던 만큼 아쉬웠다.


새로 바뀐 선생님과는 스몰토크로 수업을 시작했다. 이 선생님은 월, 화, 목, 금 총 4일간 나의 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번이 처음으로 필리핀 어학연수를 온 것이냐며 물어보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후 단어 책으로 수업을 이어갔다. 하루 세 타임 중 마지막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과는 한 달째 같은 분이라 꽤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교재 내용만 다루다가 이제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오늘은 주말에 필리핀 전통 음식인 레촌을 먹어봤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해, 책 속 주제에 대해 대화하다 정치 이야기로 흘러갔다. 내가 “한국의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갔다”고 하자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자신도 필리핀의 현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고 부대통령을 훨씬 더 신뢰한다고 말했다. 세부에 처음 왔을 땐 내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이제는 깊이 있는 이야기도 가능해졌다.


오늘은 한국의 인터넷 발달로 인한 장단점, 학구열, 그리고 유리천장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국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전하자 선생님은 놀라워했다. 필리핀은 현재 남자 대통령과 여자 부대통령이라고 설명하며, 한국에 여성 대통령이 있었냐고 물어봤다. “있긴 했지만 감옥에 갔었다”는 대답을 또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여러 번 놀라워했다.


필리핀 시내에는 노숙자들이 많고, 부모가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며, 오히려 구걸이나 돈벌이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간절히 학교에 가고 싶다면 스스로 돈을 벌어서 가야 한다고 했다. 지난주 마지막 수업이었던 선생님은 본인도 15살부터 스스로를 책임지며 골프장에서 8년간 일했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과도 많이 만났다고 했다. 그 선생님은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지만, 여동생 학비를 지원하기 위해 학업을 미뤄둔 상태라고 했다.


오늘의 교재 주제는 “발전한 나라, 한국”에 대한 장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은 외적으로는 잘사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개인의 행복은 세부 사람들이 더 높지 않을까”라고 말했고, 선생님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극빈층의 빈곤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한국에서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부모가 아이들을 그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수업이 끝난 뒤 문득 깨달았다. 한국에서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내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다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경쟁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특히 선생님이 말한 한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딸이 간호사 시험에서 상위 10등 안에 들길 바랐고, 그 친구가 시험에 합격했음에도 어머니는 실망했다고 했다. 선생님은 이해할 수 없다며, 합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아래 공부에 대한 부담을 크게 지웢었던 학창시절의 엄마 모습이었다. 나 또한 한국의 한 엄마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지만, 어쩌면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지는 않았을까? 마치 우리 엄마가 나에게 기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말로 나눴어도 흥미로운 주제였겠지만, 영어로 말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 분주했다.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진땀이 났고, 이제는 문장 형식에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더 자유롭고 풍부한 단어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필리핀 세부에서의 하루 3시간 일대일 영어 수업은 단순히 영어 실력을 키운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남겼다. 한달 동안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 앞으로도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또 다른 나라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열망까지. 이번 경험은 내게 큰 동기와 의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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