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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보다 의미

by 스타티스

2025.9.3 수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수요일 게스트가 바뀌었다. 오늘 첫 출연이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재미보다 의미인 사람입니다.”라고. 사실은 재미를 추구하지만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데는 재능이 없다고 덧붙였다.


‘나도 그런 사람인데?’ 이렇게 이어지며, 재미와 의미, 그리고 내 삶에 대한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재미와 의미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재미있어야 오래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일도 재미있어야 하고, 인간관계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나도 한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운 순간이 많을수록 삶이 풍성해질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재미는 불꽃같다. 화려하게 타오르지만 금세 사라진다.

반면 의미는 불씨 같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꺼지지 않고 오래 남아 삶을 데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매일이 반복이고, 상담실에서 한 사람의 마음과 만나는 일을 길고 어두울 때가 있다. 글을 쓰다 지우고, 다시 쓰는 일에도 에너지가 꽤 많이 든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내가 왜 이 길을 걷는가’를 붙잡으면, 버틸 힘이 생긴다. 의미가 곧 나를 단단히 붙드는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재미는 나를 웃게 하지만, 의미는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재미보다는 ‘의미‘를 택하려 한다.


재미를 추구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늘 무언가가 부족했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다음 영화를 찾았고, 한 번의 여행이 끝나면 다음 목적지를 물색했다. 맛있는 음식도, 짜릿한 경험도 금세 익숙해져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었다. 재미는 마치 중독과 닮아있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만 키웠다.


내가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을 곱씹어보니, 그것들은 ‘재미있었던’ 순간이 아니라 ‘의미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밤늦게 아픈 아이의 이마를 짚으며 열이 내리기를 기다렸던 시간. 그때는 피곤하고 걱정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보다 소중한 시간이 없었다. 친한 언니가 힘들어할 때 자주 전화를 걸어 함께 견뎠던 시간들. 함께함 자체가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마음속 타자기를 돌리며, 거듭하며 지워지고 다시 써진 문장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재미가 아니라 깊은 만족감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순간의 기쁨은, 어떤 재미보다도 진했다.


의미 있는 일들은 대부분 쉽지 않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부모가 되는 것,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 자신만의 일을 찾아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우리를 진짜 사람으로 만든다. 재미는 우리를 순간 들뜨게 하지만, 의미는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


요즘 세상은 더욱 재미에 목마른 것 같다. SNS에는 웃긴 영상들이 넘치고,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짧고 빠르고 자극적인 것들이 주목받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휩쓸려 살다 보면, 어느새 공허함이 밀려온다. 웃고 또 웃어도, 마음 깊은 곳이 채워지지 않는다.


진정한 성장은 의미 있는 불편함을 견디는 데서 온다.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 힘든 사람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 실패를 거듭해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이런 일들은 순간순간은 힘들지만, 결국 우리를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이제 묻는다.

“이것이 재미있는가? “가 아니라

“이것이 의미 있는가? “를.

“이것이 나를 즐겁게 하는가? “가 아니라 “이것이 나를 성장시키는가? “를.


물론 모든 재미를 거부하자는 건 아니다.

가끔의 웃음과 즐거움은 삶의 양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다. 진짜 영양분은 의미에서 온다.

오늘도 나는 의미를 택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 삶의 길에서 만나는 작은 성취들이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재미는 나를 웃게 하지만, 의미는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있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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