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대하여
대학원 후배를 만났다. 학교 다니는 동안 나에게 손 편지를 써준 그녀다. 내가 그녀에게 무얼 해주었더라?
오히려 내가 통계작업할 때 도움을 받았다. 준 건 없고 받은 것만 있는데, 마음까지 받았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녀가 생각하는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무거웠다.
그래서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 학기가 지나갔다.
그 후로는 내 논문을 쓴다고 정신이 없었다. 일하면서 졸업도 준비하느라 여러 가지로 버거워서 그 인연을 돌보지 못했다. 졸업해서는 내 마음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말이 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후배가 논문심사 중이었다. 그때의 나처럼 정신이 없었을 거다. 그래도 친절히 답장이 왔다. 21년 겨울에 차 한잔 만나고 싶었는데, 두 해를 넘기고 만났다.
박사과정은 미국에서 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직 최종 원고 제출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에게 하루 반나절을 내어주었다. 그녀는 하루에 30분을 자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친구다. 그래서 그 마음이 어떨지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미안했을 거 같다. 이제는 고맙다. 한없이 한없이.
커피 한잔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면서 말이다.
그녀에게 꼭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나로서 충분했다. 그녀 또한 나에게 대학원에서 만난 후배란 존재로 충분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각자 생활로 인해서 우리가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인연이 있다. 마음이 쓰이는 인연이 있다.
쉬는 것보다는 열심히 하는 것에 더 익숙한 그녀에게
쉼의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밥만 먹고 보내줄 수 있었는데 붙잡았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중 한 곳을 소개해주었다.
아니 초대했다. 초록의 기억을 담고 한국을 떠났으면 했다.
그녀의 과거 인생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말속에 담긴 한국에서 기억은 무거웠다.
그 기억들을 두고 떠났으면 했다. 지도 교수님께서 미국유학을 적극적으로 권하셨다고 했다.
역시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하구나.
물고기들은 환경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특히 코이라는 물고기는 생활하는 공간에 따라서 크기가 달라지는 걸로 유명하다고. 작은 어항에서 살면 5cm로 평생 살고, 넓은 호수에서는 1미터가 넘게 자란다고 한다.
그녀가 자신에게 맞는 환경에서 생활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하루에 3시간이라도 푹 자길.
인연의 마지막은 알 수 없다.
우리는 둘 다 먼저 연락하거나 자주 연락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아마도 남은 인생동안은 종종 그녀를 떠올리게 될 거 같다.
그리고 오늘은 잠을 잘 수 있길, 편안하길 바라게 될 거 같다.
그리고 인생에서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수 있기를.
쓴맛뿐 아니라 단맛도 충분히 알게 되는 그날이 오길.
*10년 뒤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녀에게서 이제는 6시간을 자게 되었다고 연락이 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