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낼 수 있는 안전한 대상
내가 생각하는 효녀
"이미 충분히 효도했어요! 부모님이 스타티스씨에게 기대한 것이 공부 아닌가요?
이번에 석사 졸업한 걸로 충분히 효도한 거죠."
교육분석받을 때, 상담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어릴 적 있는 존재 그대로 내가 받아들여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넌 동생들 모범이 되려면 1등 해야만 해. 그래야 보고 따라 하지."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자식이라도 사랑받을 짓을 해야지 사랑받지."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래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사이 나는 점점 사라져 갔다. 결국에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었다. 내가 상담공부를 하게 된 이유다. 나를 찾기 위해서.
토, 일 이틀 동안 집단상담에 참여했다. 두 딸은 집에서 충분히 둘이 있을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친정엄마가 전화 오셔서 "방학되었는데 애들 우리 집에 보내지 않을래?"라고 하셨고, 나는 효도(?) 차원에서 애들을 맡겼다. 사실 나는 아이들끼리 집에 있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친정엄마께서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신 적이 없거니와, 가끔 급해서 맡기면 아이들은 집에 와서 감기 등 꼭 아팠다. 그냥 힘들어도 내가 혼자 하는 편이 나았다. 작년부터 생각이 조금 바뀌어서 엄마가 원하는 건 들어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일요일 저녁 7시 친정부모님과 저녁을 먹었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원한 걸 들어드린 거였기에 마음이 썩 편하지 않았다. 대화도중 이 마음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나 보다. 말이 툴툴거리며 나왔다. 부모님과 마음 편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거의 간섭(?) 조로 이야기하신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먼저 뾰족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분들이다. 이 세상에 부모님 두 분이 살아계신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내 마음을 다 알 수 없는 큰 딸이 오늘 아침에 말했다.
"엄마, 그러다 엄마 진짜 후회한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왜 그렇게 하노?"
"나도 모르겠네. 네가 엄마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라는 거 아니까 생각해 볼게."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지면 진짜 후회한다."
눈물
아침 10시에 슈퍼비전이 잡혀있어서 딸의 이 목소리를 뒤로 하고 급하게 집을 나왔다. 1시간을 운전해서 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엉엉 소리 내어 울만큼 슬픔이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왜 그랬을까?
운전을 해야 하니, 휴지를 꺼내서 닦으면서 생각했다. 내 삶에서 억울한 상황이 생기면 부모님 탓을 했었다.
'왜 그때 결혼해라고 해가지고!'
'왜 그때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고 공부만 하라고 했는지!'
'왜 지금도 이렇게 잔소리만 하는지!'
'왜 자식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지 않고!'
이런 생각들로 부모님을 한때 미워했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부모님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 부모님 덕분에 먹고, 입고 자는 건 걱정 없이 살았던 거였다. 그래도 학창 시절에 두 분이 크게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었기에 공부만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그 모든 것들이 부모님 '덕분에'였다.
머리론 이렇게 생각해도 만나면 다시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비꼬아서 대답했다. 어떻게든 시비를 걸려고 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왜 그랬을까?
화낼 수 있는 안전한 대상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나에게 가장 '안전한' 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은 내가 화를 내도, 내가 퉁명스럽게 말해도, 내가 미친 듯 발작을 해도 받아줄 분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참 성깔 있는 사람이었었다. 까다롭기도 하고 예민하기도 했다. 아마도 키우실 때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아이였을 거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이제야 그나마 그냥 손가락이 될 뻔했는데, 지금 흘러가는 상황으로 봐서는 더 아픈 손가락이 될 거 같다.
내 곁에는 부모님이 든든하게 계신다는
이 소중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툴툴거리며 살고 있었다.
부모님께 그랬다면,
남편에게도
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걸 깨닫는 순간에
눈물이 흘렀던 거다.
소중한 걸 소중하게 대하지 않고 있었다.
더 늦게 전에 지금이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어떻게 갑자기 깨닫게 되었을까?"
나에게 물었다.
중요한 걸 깨달은 순간
어제 집단상담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헤어지기 전에 한 분이 다가와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선생님이 지난 세월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라. 그런데 정말 곱게 생긴 외모와 달리 많은 것을 경험했을 거라 생각이 들었어. 정말 애썼다. 살아내느라. 그리고 너 정말 예쁘다. 있는 그대로 너 존재 그대로."
이 말을 해주고 한참을 꼭 안고 있었다. 고작 이틀 전에 만난 사람인데 말이다.
이 말을 듣는데 눈물이 또 펑펑 났다. 부모님께, 남편에게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이틀 전에 만난 분에게 듣는데도 충분히 벅차올랐다.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었다. 그냥 그 말을 듣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참만남집단상담이 무슨 의미일까 별로 고민하지도 않았었는데, 어제 어쩌다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집단상담이 그토록 매력적이다. 나에겐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온전히 만날 수 있는 곳.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고 있다.
슬퍼서 울고,
감사해서 울고,
과거 못난 나를 깨닫게 되어 울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하며 울고 또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