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말
하루에도 몇 번씩 큰 한숨을 쉬고 있다.
"휴"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하는 일도 많다. 거실 의자에 잠시 털썩 앉을 때면, 한숨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오늘 아침,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방학 수업에 데려다주고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휴"
"엄마, 고민 있어요?"
"할 일이 쫌 많네."
"엄마 그러면 어려운 것부터 하세요. 나도 샤워할 때 그렇게 해."
"그럼, 샤워할 때 머가 제일 어려워?"
"머리 감는 게 제일 어려워. 그래서 제일 먼저 해. 샴푸를 머리에 골고루 묻히는 것도 어렵고, 거품내고 헹구는 것도 어려워. 그래서 먼저 해."
"그랬구나..!"
3년 전, 유치원 때부터 아이는 혼자 씻는 연습을 시작했다. 한창 바쁠 때는 집에 오면 아이가 잠들어 있었으니, 혼자 씻었다. 이제는 매일 혼자 씻는다.
머리 감는 걸 어려워하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울림 있는 말로 돌려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를 내려주고, 대학원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나에게 어려운 건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40분 동안 통화하면서 지금 내가 왜 이렇게 바쁘게 일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리해서 대학교 상담센터에 1년 수련을 가려는 이유도 뚜렷해졌다. 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섭고 두려운 건 피하고 봤었는데, 이제는 정면돌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단 해보자.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어려운 건 뭘까, 주차하고 집에 들어와서 다이어리를 펼쳤다.
이삿짐을 정리하는 거였다. 주방과 뒷베란다를 정리했다. 50리터 쓰레기봉지 3 봉지를 버렸다. 당장 쓰지 않는 건 모두 정리했다. 소형가전은 아파트에서 따로 모아두는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옮겼다. 아마도 10번은 넘게 왔다 갔다 한 듯하다.
주방이 꽤 비워졌다. 그리고 세탁기를 주문했다.
내일은 집 계약을 정식으로 할 예정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계약과 관련된 일이다. 이번에는 오롯이 혼자 계약과 이사를 하려고 한다. 내일은 마침 남편의 출장이고, 이사일은 마침 또 남편과 시어머니가 여행을 떠난 기간이다. 언제까지나 어렵고 힘든 걸 피하며 살 수 없으니.
그동안 온전히 이사를 담당해 준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이번에는 이사 결정부터 집을 보고 오고, 공인중개사 소장님과 연락, 조율, 인테리어, 가구, 가전 등 모두가 내가 진행하고 있다. 가끔 나이가 들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봐 은근히 두려웠다. 이제는 세상 밖을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그러할 예정이다.
둘째의 말처럼 어려운 것부터.